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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정치의 천박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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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정치의 천박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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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회에 국한한다면 누가 최고의 보수주의자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70년 이상 세습독재가 유지되는 그곳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진보라고 불려야 한다. 진보와 보수는 상대적으로 변한다. 현상 타파를 부르짖으면 진보, 현상 유지를 주장하면 보수다. 프랑스혁명 시기에는 자유민주 세력이 진보, 왕권 수호 세력이 보수였다. 자본주의가 심화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보수로 바뀌었고, 공산사회주의가 진보 쪽에 자리매김됐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겪고 있다. 국회에서, 거리에서 대결 양상이 극렬하다. 진보, 보수의 탈을 썼지만 실제 이념의 틀은 양측 모두 어설프기 그지없다. 건전한 논쟁을 이끌 정치사상가, 이데올로그가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 빈약하니 정치가 천박해진다. 진영 논리, 인물 추종, 지역 갈등이 판치는 정치의 근본 배경이다.

진보 진영을 보자.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최대 담론이 검찰 권력 약화, 비례대표 국회의원 확대인가. 안보, 경제 문제를 둘러싸고 안개가 가득 낀 상황에서 큰 그림의 대안이 있어야 한다. 장 자크 루소로 대변되는 자유민주주의 사상,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사회주의 사상. 근대 정치사상사에서 진보는 선동적이고 방향이 분명했다. 한국의 진보 이데올로그는 누구인가. 유시민인가, 심상정인가. 탁현민인가. 심도 있는 정치철학이 없다 보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언어 희롱을 일삼는 이가 진보의 대표처럼 비친다.


현 정권 초기는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문정인, 장하성이 나름의 논리를 내놓았다. 그것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자 어디로 가는지 길을 잃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왼쪽 깜빡이 켜고 오른쪽으로 간다'라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왼쪽 깜빡이는 켜고 있지만 차 앞은 오락가락, 정신이 없다. 그대로 가든지, 보완을 하든지 종합 정리된 로드맵을 다시 내놓고 국민 평가를 받아야 한다.


보수 진영 역시 심각하다. 근대 보수주의를 정립한 에드먼드 버크의 책을 읽어본 정치인이 있을까. 점진적 사회 발전을 향한 사상적 틀이 얼마나 정교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이가 현 야권에 얼마나 있을까. 개량주의자의 최고 덕목 '정치적 사려 또는 분별(Prudence)'을 실천적으로 체득하지 못하면 보수주의의 승리는 어렵다. 사려분별, 솔선수범, 검약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무장해야 국가 방어, 공공의 안전, 사유재산 보호 등 보수의 가치를 추구할 힘이 생긴다.

지난 시절 노재봉, 박세일 등 각론은 좀 다르지만 보수를 아우르는 정치사상가들이 있었다. 지금은 '반문(반문재인)'이 보수 진영의 정치 구호다.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상대의 실수에만 기대게 된다. 보수 결집을 위한 '빅 텐트'를 거론하지만 그를 뒷받침할 사상이나 이데올로그는 보이지 않는다.


일방의 정치 이념을 강요하던 권위주의 시대는 지나갔다. 김영삼, 김대중 등 독재에 저항하며 커온 인물의 시대도 갔다. 한국 정치가 이제는 성숙할 때가 되었건만, 계속 뒷걸음질이다. 표피적, 대증적 정치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한번 멈춰 서서 숙고해보라. 권위주의 시절에도 정치사상가를 중시하는 시늉은 했다.


여야가 '한국적 진보' '한국적 보수'의 이데올로그를 발굴하고 앞장세우려는 노력부터 했으면 한다. 진보와 보수는 선악의 개념이 아니다. 함께 모여 잘사는 방법론에 대한 견해차일 뿐이다. 경제, 안보, 교육, 노동, 복지, 분배 등 각자 논리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목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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