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리가 없는 작은 못이여

망치로 두들기면 납작한 대가리 대신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하는 작은 못이여

휘어지는 못이여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며 불꽃 튀기는 못이여

그러나 결국 안으로 들어가

휘어진 몸을 기어이 숨기고

벽 전체를 침낭으로 삼고 잠들 작은 못이여

겁대가리 없는 작은 못이여

작지만 작지 않은

수십 갈래로 갈라져 적의 내장에 박히면

내출혈을 일으킬 자랑스러운 못이여

삼켜지면 툭 뱉어지고 말

당최 맛대가리라곤 없는 못이여

대가리가 없는

대가리가 없어 딱히 생각이 없는

생각이 없으므로 쓸데없는 생각도 없는

쓸데없지만은 않은 못이여

없는 생각의 불꽃을 튀기며

무데뽀로 끝까지 밀고 들어가는 작은 못이여

없는 대가리로

열리지 않는 가슴에 쿵쿵 두드려지는 못이여

때로 대가리란 없느니만 못하니

대가리가 없어 쉽게 빼낼 수도 없는

거기 있는 줄도 모르고 잊혀

이제는 온 존재가 사라지고 만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게 돼 버린 못이여

대가리를 다느니

그냥 벽 안에 묻혀 고요히 죽고 말

세상 겁대가리 없는 작은 못이여

[오후 한 詩] 대가리가 없는 못/황유원
AD
원본보기 아이콘


■ 그래, 그런 사람 좀 만나고 싶다. "겁대가리 없는" 사람, "무데뽀"인 사람, "무데뽀로 끝까지 밀고 들어가는" 사람, 우직한 사람, "쓸데없는 생각"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 오로지 한 가지밖에 모르는 사람, 정직한 사람, 신실한 사람,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을 적다 보니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되짚게 된다. 아니, 이런 말들을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시쳇말로 '꼰대'라는 걸 뜻하는 건 아닐까 싶어 서글프고 부끄럽다. '나도 왕년엔 겁대가리가 없었지'라는 헛된 호기는 어쨌든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말과 다름없다. 채상우 시인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