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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낡은 집에서 고생한 게 죄인가"… '입찰 무효' 철퇴 맞은 한남3구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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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서울시 한남3구역 입찰 무효 권고… 한남3구역 조합원 "눈앞이 깜깜" 분통
"재개발이 한강변 초고가 아파트 가격 고공행진 기름 붓는다" vs "오랫동안 고생…재개발 이익이 죄냐"

▲ 26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조합 사무실.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만 기자를 모두 내쫓는 등 조합의 반응은 거칠었다. (사진=이춘희 기자)

▲ 26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조합 사무실. 문을 잠그지는 않았지만 기자를 모두 내쫓는 등 조합의 반응은 거칠었다. (사진=이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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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이춘희 기자]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한남3구역 재개발 사업 시공사 '입찰 무효' 결정을 내린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조합 사무실 앞은 격앙된 조합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정부가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들의 입찰제안서를 문제삼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데 이어 서울시도 입찰 강행시 조합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거론한데 대한 불안과 분노가 한꺼번에 분출됐다. 조합원 이모씨(50대 초반)는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조금 이익을 보면 안되는 것이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한남3구역 조합 분위기는 더욱 험악했다. 사무실 문은 개방했지만 취재진들의 접근을 막고 향후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국토부는 이날 한남3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 DL , GS건설 이 제안한 이주비 추가지원과 사업비 금융지원, 고분양가와 특화설계 등을 공약한 입찰제안서가 조합에게 직ㆍ간접 재산상 이익 약속을 금지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132조를 위반할 소지가 크다며 조합에 입찰 무효를 통보했다.

앞서 3개 건설사는 모두 이번 수주전에 나서며 파격적 조건을 내걸었다. 가장 파격적 조건을 내건 건 대림산업이다. 대림은 담보인정비율(LTV) 100% 수준의 이주비 대출과 공공임대주택 '제로(0)' 추진을 약속했다. 더불어 한강조망가능 가구 수도 1038가구에서 2566가구로 늘리는 혁신설계를 제안했다.


다른 건설사들도 파격적 조건을 내건 건 마찬가지다. GS건설은 분양가상한제 지정 제외를 전제로 일반분양가 3.3㎡당 평균 7200만원을 공약했다. 이주비 대출도 LTV 90% 수준으로 제안했다. 이와 함께 조합 사업비 1조47000억원 무이자 제공, 조합원 전원 한강조망세대·테라스하우스·펜트하우스 100% 보장을 내걸었다. 현대건설도 '조합원 분담금 입주 1년 후 100% 납부(이자비용 현대건설 부담)', 상가조합원들을 위한 '상가 인테리어 비용 5000만원 환급' 혜택 등을 제안했다. 이주비 대출은 LTV 70% 수준에 가구당 최저 5억원 지원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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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와 서울시는 이러한 조건들이 모두 위법 소지가 크다고 결론 내렸다. GS건설의 고분양가 보장과 현대건설의 조합원 분담금 납부 유예 등은 모두 금품제공 행위로 간주해 도정법 132조 위반사항으로 판단했다. LTV 역시 현재 서울 전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40% 수준으로 제한되고 있는만큼 같은 조항을 위반한다고 봤다. 특히 대림산업의 임대주택 제로는 재개발 사업에서 나오는 임대아파트를 서울주택공사(SH공사)를 통해 서울시가 전량 매입토록 한 서울시 '도시및주거환경정비조례' 28조를 위반했다고 봤다.

서울시는 조합이 입찰 무효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조합에 대한 '수사 카드'를 거론하며 압박 중이다. 조합은 다음달 18일 시공사를 결정할 계획이었지만, 재입찰이 진행될 경우 사업 지연은 불가피하다. 이날 조합사무실 앞에서 만난 김모씨(여, 50대)는 "어쨌든 지연된다는 것 아니냐"며 "이미 몇 년 전에 재개발을 끝났어야 했지만 박원순 시장이 차일피일 미뤘다. 지금 집이 무너지기 직전인데 또 연기된다니 눈앞이 깜깜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 26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일대. 허름한 상태로 방치돼 있는 집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사진=이춘희 기자)

▲ 26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일대. 허름한 상태로 방치돼 있는 집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사진=이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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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3구역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 한강변을 끼고 위치했다. 노후 빌라가 산비탈을 타고 빽빽이 들어선 탓에 2009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고 지난 3월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뒤로는 남산, 앞으로는 한강이 펼쳐지는 '배산임수' 지역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인근에는 재벌가(家) 고가주택이 밀집했고, 올해 전국 공시가격 최고 주택도 위치했다. 4년 연속 전국 실거래가 1위를 기록 중인 아파트 '한남더힐'도 한남3구역 옆 동네에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한남더힐의 경우 지난달 소형 아파트(59㎡)가 20억2000만원에 거래됐다. 석달전(14억1000만원)보다 6억원이나 더 뛰었다. 조합원들 사이에선 한남3구역에 최고 29층짜리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 한남더힐에 버금가는 강북 최고 부촌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됐다. 건설사들이 앞다퉈 고분양가와 특화설계 등을 통한 최고급 아파트 공약을 내세운 배경이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가격이 21주 연속 상승하고 한강변과 강남 아파트 단지에서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는 상황인 만큼 '분양가 7200만원' 등 고가 아파트 분양에 따른 집값 상승을 우려한 정부가 재개발 사업에 제동을 건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정부가 너무하다"면서 "오랫동안 낡은 집에서 고생해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 이게 죄인가 싶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다만 재개발 사업이 무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한남동 A공인중개소 대표는 "어차피 여기 사는 조합원은 이제 거의 없다"며 "외지인들은 살지도 않으니 오래 기다릴 각오가 된 상황이고, 지금 살고 있는 이들도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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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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