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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핵무장론과 친일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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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완주 부장] 사자든 코끼리든 가시를 곧추세운 고슴도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미국의 체제전복 위협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했다는 북한의 입장이 그와 다르지 않다.


공교롭게도 고슴도치를 빗대 핵무기 개발 명분을 설파한 원조는 박정희 대통령이다. 최근 비밀해제된 미 정보기관의 문서에는 유신정권의 핵개발 프로젝트가 적나라하게 소개된 바 있다. 계획대로였다면 한국은 1980년대 중반 핵폭탄용 플루토늄을 확보했을 것이라는 증언도 공개됐다.

한번 좌절을 겪은 '핵무장론'은 2006년 다시 불거졌다. 북한의 첫 핵실험이 그해 감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핵무장에 들어가는 순간 감당해야 할 유엔(UN) 경제제재는 재앙 수준으로 경제구조를 파괴시킬 수밖에 없다. 자체 핵무장론에 대해 허무맹랑한 '안보팔이' 공세라는 비난이 뒤따르는 이유다.


그러던 차에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대학교의 보고서가 외신에 보도돼 전술핵 재배치 주장의 불씨를 지폈다. 보고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핵공유 방식을 적용해 미국이 한일 양국과 핵 능력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다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정세를 고려해 NATO와 달리 유사시 전술핵 투하는 미국이 직접 담당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는 보고서 내용이 공개되자 NATO식 핵공유 검토를 청와대에 요구했다. 보수 야당의 입장에서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의 부담을 지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했다. 실질적 전술핵 재배치 효과를 보는 '절충안'이라고 반색하고 있는 것이다.

덩달아 핵추진 잠수함 건조 카드 등 다양한 핵무장론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당이 '친일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거렸던 상황을 타개할 기회로 삼는 듯 했다.


문제는 한국당의 핵무장 주장 역시 친일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난국 타개용 방아쇠가 아니라 오히려 '덫'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정치권에서 핵무장론이 제기될 때마다 가장 반기는 측은 사실 일본이었다. 북한을 앞세워 핵무장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일본 내 우익세력은 이를 호재로 여기는 실정이다. 한국의 핵무장론이 일본 내 반대 여론을 설득할 명분이 될 수 있는 탓이다.


한일의 핵무장론은 같은 말인 듯 보이지만 속사정을 파헤치면 소름이 돋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 내용이 다른 미ㆍ일 원자력협정의 존재 때문이다.


일본은 1988년 이 협정을 통해 핵무기 보유국이 아니면서도 플루토늄의 합법적 보유가 가능한 유일한 국가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 결과 일본은 2016년 현재 원폭 600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의 플르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와 달리 언제든지 핵개발이 가능한 여건을 갖춘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NPT를 탈퇴하지 않는 한 핵탄두용 플루토늄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과 척을 진다는 결연한 의지가 있다면 몰라도. 일본과의 그 차이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보다도 못한 상황이다. 일본이 한국의 핵무장론을 반색하면서 속으로 웃는 이유다.


NATO 방식의 핵무기 공유도 우리에겐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일본이 추구하는 '전쟁이 가능한 군사대국화'의 길을 열어주는 명분 제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핵무기 공유에 NATO식 집단 안보체제를 도입한다면 과연 핵무기에만 국한할 수 있을까.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의 제안으로 NATO 개념과 유사한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안보전략을 이끌어 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이해관계를 활용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를 통해 군사대국화의 길을 모색하려고 한다.


국제정세를 파악하는 통찰력이 배제된 핵무장 주장은 자칫 포퓰리즘에 빠질 우려가 높다. 친일 프레임의 함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정완주 부장 wjchu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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