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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이우환 조명 "50년간 조용히 자신의 작품세계 구축"

최종수정 2019.07.23 10:13 기사입력 2019.07.23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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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이우환은 50년간 조용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미국 일간 월스리트저널이 22일(한국시간) 특집 기사를 통해 이우환 화백을 조명했다. 저널은 이우환 화백에 대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며 요즘 그의 대형 개인전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사는 올해 초 이우환 화백이 미국 롱아일랜드의 거대한 채석장에서 돌을 찾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채석장을 빠르게 움직이며 원하는 돌을 찾았고 가끔 손으로 지시를 할 뿐 말은 별로 없었다고 저널은 설명했다.


돌은 이우환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소재다. 이우환은 1960~1970년 일본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 '모노하(mono-ha·모노파)' 운동을 주도했다. 모노하 작가들은 '만들지 않는다'에 초점을 맞췄다. 돌, 나무, 흙, 철판 등의 사물에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표현했다. 작품을 창조하는 대신 이미 존재하는 사물을 새롭게 제시하고자 했다.


이우환은 저널과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고향 함안에서 경험한 바위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매우 맑고 오염되지 않은 냇가가 있었다. 친구들과 냇가에서 수영을 했고 자주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위에 대한 경험은 내가 읽고 쓰기를 경험하기 훨씬 이전부터 항상 내 속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모노하는 처음에 인정받지 못 했다. 이우환 화백은 "당시 기자들은 모노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지 사물을 주변에 던져놓을 뿐이라고 치부했다"고 했다.

이우환 화백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이우환 화백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이우환은 1936년 함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3·1운동 때 일본군 순사의 칼에 찔려 다리를 절뚝였다. 아버지는 기자였다. 할아버지는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이우환이 초등학교에 다니기를 원했다. 당시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말해야 했다. 이우환은 학교에서 그림, 서예, 시를 배웠다. 이우환은 1956년 서울대에 등록했다. 하지만 2개월 후 일본의 삼촌댁에 방문했다가 아예 일본에 정착했다. 처음에 그는 작가가 되고자 했다. 니혼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그림은 돈을 벌기 위해 그렸다. 그는 예술만큼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1961년에는 5·16 군사혁명에 대한 글을 잡지에 쓰기도 했다.


저널에 따르면 이우환의 반식민주의 시각이 일본인들을 화나게 했지만 유럽에서는 환영받았다. 이우환은 1971년 파리 비엔날레에 초대받았고 파리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유럽에서의 성공은 일본에서도 그를 평가하는 계기가 됐다. 1980~1990년대 유럽과 아시아에서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2008년 뉴욕에서 첫 전시를 페이스 갤러리에서 했다.


워싱턴의 허쉬혼 박물관은 오는 9월 이우환의 대규모 개인전을 할 예정이다. 허쉬혼 박물관은 야외 공간을 모두 이우환의 전시 공간으로 내줄 예정이다. 저널은 이우환이 워싱턴에서 하는 첫 번째 전시라며 지금껏 미국에서 한 전시 중 가장 큰 공간에서 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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