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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sts]나의 100년

최종수정 2019.03.22 11:05 기사입력 2019.03.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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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태닉호가 사라진 1912년에 나타나 2008년 금융 위기 때 사라진 사람
전쟁도 공황도 아슬아슬하게 버텨낸 ‘쩌리’들의 위대한 삶, 사랑, 역사 이야기
미국하고 대화한 20세기 이야기꾼 터클이 낡은 타자기로 기록한 100년

스터즈 터클 지음/신윤진 옮김/이매진

스터즈 터클 지음/신윤진 옮김/이매진



평범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주며 ‘쩌리’들의 삶을 기리다가 유명해진 사람이 있다. ‘말로 푸는 역사’의 대가, 구술사 책을 내 퓰리처상을 받은 스터즈 터클이다. 시카고 사람 터클이 세상을 떠난 뒤 더블유에프엠티(WFMT) 라디오와 시카고 역사박물관이 협업해 만든 ‘스터즈 터클 라디오 아카이브’에 정리된 1200건이 넘는 인터뷰 기록은 20세기 미국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삶의 연대기다. 45년 동안 사람들 이야기를 듣던 터클은 아흔네 살에 ‘미국 출판계의 살아 있는 전설’ 앙드레 시프랭하고 함께 ‘평범하지만 비범한 사람들’의 마이크로 살아온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책을 낸다. 컴퓨터를 못 다뤄 아끼는 낡은 타자기로 손수 썼다.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따뜻함이 묻어나는 유머와 아흔 넘은 나이를 의심하게 만드는 놀라운 기억력 덕에 바로 곁에 앉아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환상적인 이야기꾼이라고 시프랭은 터클을 치켜세운다. 올리버 색스처럼, 마거릿 애트우드처럼, 우리는 내 앞의 한 사람이 곧 우주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려주며 듣고 읽고 쓴 ‘터클스러운’ 수다에 빠져든다.


이 책은 아버지 이야기로 시작해 아들 이야기로 끝난다. 터클의 부모가 폴란드 비아위스토크에서 뉴욕으로 온 때는 1902년. 타이태닉호가 사라진 1912년에 태어난 터클은 20세기를 지나 2008년 금융 위기 때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운영한 하숙집과 소광장에서 만난 ‘쩌리’들 덕에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얻는다. 그사이 법학을 공부한 터클은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거치며 뉴딜 때 진행된 구술사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삶의 행로를 바꿔 연극, 영화, 방송, 대중음악을 넘나드는 르네상스형 지식인이 됐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칠 때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감시당하고, 아내 아이다하고 함께 치열한 민권 운동의 현장에 직접 뛰어들었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이성애자이면서도 ‘레즈비언과 게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고, 백인이면서도 ‘흑인 작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특이한 사람이 됐다. 시카고 역사박물관 특별 상주 학자가 된 뒤에는 구술사에 기반해 미국 민중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온힘을 기울였다. 2차 대전을 다룬 《선한 전쟁(The Good War)》으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또 다른 대표작 《일(Working)》을 써서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 곧 자기 자신이기도 한 ‘쩌리’들의 목소리를 들려줬다.

이브 몽탕부터 앤서니 퀸까지, 페데리코 펠리니부터 우디 앨런까지, 테네시 윌리엄스부터 셸 실버스타인까지, 빌리 홀리데이부터 재니스 조플린까지, 버트런드 러셀부터 에드워드 사이드까지, 로자 파크스부터 수전 브라운밀러까지, 그리고 우리 시대의 많은 셀러브리티부터 더 많은 ‘쩌리’들까지. 터클은 1952년부터 1997년까지 45년 동안 〈스터즈 터클 프로그램〉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며 20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여러 이야기를 모아 책 열두 권을 썼다. 터클은 진보든 보수든 자기 삶과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인종, 계급, 성적 지향 등 모든 차별을 앞장서서 반대했고, ‘스스로 필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기’를 인터뷰의 기술로 꼽았다. 남다르게 잘 듣고 잘 쓰는 비결은 별다르지 않았다. ‘터클스러운’ 쩌리, 좋은 사람이면 충분했다.


옮긴이 신윤진은 ‘옮긴이의 말’에 이렇게 썼다.

“더블유에프엠티 라디오에서 45년간 방송을 진행한 디스크자키로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20세기 미국사를 재조명한 구술사가로서 터클이 풀어내는 방대한 이야기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에는 내 능력이 너무 모자라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사람 이름, 역사적 사실과 정치적 사건은 물론 책과 노래와 스포츠와 연극과 영화와 드라마 등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문화 이야기까지 산더미처럼 많은 자료의 숲속에서 길을 잃고 한숨을 내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직업이 번역가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도 힘겹지만 굴복하지 않고 싸움을 이어간,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희생이 있었지만 그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 발버둥 쳤고, 그래서 점차 이기는 싸움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다른 나라, 그것도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 믿는 나라의 다른 도시에도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구시대의 종언에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을 듯했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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