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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충훈의 돛단Book] "그래도 일본이 젠틀했다"는 당신께

최종수정 2019.03.22 11:00 기사입력 2019.03.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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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시 후지타니 著 '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


2차대전기, 美日 인종주의 정책의 공통점 추적

거친 인종주의-> 친절한 인종주의 변화 보여

총력전 중 징병, 착취, 지배 정당성 확보 구실

극한 상황서 보인 국가적 꼼수... 반면교사해야


[박충훈의 돛단Book] "그래도 일본이 젠틀했다"는 당신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을 무대로 총력전을 펼치던 일본과 미국은 어느새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양국은 식민지 조선인이나 혹은 하와이로 이주했던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해 그동안의 편견을 거두고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편으론 그들의 인종적 우수성을 칭찬하며 갖은 정책적 혜택을 안겨주기도 했다.

'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는 이 같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과 미국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교수인 저자 다카시 후지타니는 전쟁이라는 극단의 상황에 처한 미국과 일본을 대상으로 초국가적인 비교 연구를 시도했다. '일본은 식민지를 수탈하는 전체주의 국가, 미국은 식민지 해방을 돕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기존의 상식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두 국가를 보려 한 것이다. 저자는 그 결과 두 국가 모두 인종차별을 소리 높여 부인하면서도 동시에 인종주의를 포용하는 기묘한 공통점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우선 일본을 보자. 저자는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생체정치' 개념을 들어 일본의 인종주의적 관점이 변화한 이유를 설명한다. 생체정치란 쉽게 풀이하자면 '사람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정치'를 뜻한다. 도시계획을 세우고 보험, 복지제도를 정비하는 따위의 일들이 그것이다. 지배 세력은 생체정치를 펼치는 동시에 피지배 세력에게 죽음을 요구할 권리도 가진다. 지배자가 베푼 만큼 국민도 필요할 때 죽음을 불사해야 한다는 '죽음정치(necropolitics)'가 늘 생체정치와 함께한다.


사실 일본은 1930년대 중반까지 조선인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큰 힘을 쓰지 않았다. 조선총독부는 1938년이 돼서야 조선인에게 초등학교 보편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할 정도였다. 저자는 "일단 총력전의 논리로 인해 인구가 부족하다고 생각되자 조선의 식민주체들을 향한 제국과 총독부의 정책은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즉 일본은 전쟁에서 부족한 물자를 생산하고 자신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워줄 이들이 필요했기에 조선 식민지에 생체정치를 도입했다. 전쟁 막바지에 조선인 대상 사회사업ㆍ복지는 더 확대됐다. 여성 노동자를 더 많이 동원하기 위해 수만 개의 공동탁아소가 개설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마이 다다시 감독의 영화 망루의 결사대(1943)은 조선과 만주의 접경지대 '만포진'을 배경으로 마적단과 맞서 싸우는 일본경찰과 마을 자경대 연합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일본의 국민 배우 하라 세츠코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이마이 다다시 감독의 영화 망루의 결사대(1943)은 조선과 만주의 접경지대 '만포진'을 배경으로 마적단과 맞서 싸우는 일본경찰과 마을 자경대 연합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일본의 국민 배우 하라 세츠코가 여주인공을 맡았다.



저자는 사회철학자 프란츠 파농의 '거친 인종주의', 데이비드 테오 골드버그의 '친절한 인종주의'라는 개념을 빌려와 당시 일본의 인종주의 정책 변화를 조명한다. 조선인은 일본인과 전혀 다르며 개선해야 할 존재라는 '거친 인종주의'적 관점은 희석되고, 조선인과 내지인은 다르지 않으며 충분히 교화할 수 있다는 포용적인(친절한) 인종주의 논리가 대두했다. 일본 교육총감부가 1944년에 펴낸 '조선 출신 병사의 교육 참고 자료'에서 이 같은 변화를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조선인이 강자에게 아첨하고 약자를 업신여기며 비위생적이지만, 이는 역사적으로 숱한 고난을 겪으며 생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친절한 인종주의 시대에 들어 조선인들은 더 많은 죽음과 야만성을 경험해야 했다. 저자는 "조선인들에 대한 조직적인 육체적, 성적 폭력이 일본이 친절한 인종주의로 전환하던 바로 그 기간에 가장 무섭고 광범위하게 행사됐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라고 독자에게 묻는다. 생체정치로 진보했음에도 죽음정치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역시 일본인 이주민 같은 소수민족을 다루기 위해 친절한 인종주의를 도입한다. 일본학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자 1960년대 주일 미국 대사를 지낸 에드윈 라이샤워는 친절한 인종주의를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현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1942년에 '황색인'과 '갈색인'에 대한 관리 전략으로 일본계 미국인들을 병사로 동원할 것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썼다. 2차 대전 말기엔 '조선 출신 병사'와 비슷한 콘셉트로 인종적 소수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군사 지침서 '니그로 부대의 지휘' 같은 책도 나왔다.


저자는 미국이 일본계 미국인을 병사로 동원한 이유가 군사력 보강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난 후 아시아인들에 대한 관리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라이샤워의 '일본에 대한 정책 비망록'을 인용해 미국이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도 일본 천황을 꼭두각시로 계속 세워두게 할 계획이었음을 고발한다. 일본계 미국인들이 천황제와 대비되는, 선진적인 미국식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길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오늘날에도 일본이 '명예직 백인국가'로 미국의 동아시아 지배 이데올로기를 두둔하며 스스로를 잠재적인 동맹국으로 여기는 일과 호응한다. 저자는 이러한 미국의 헤게모니 전략이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오늘날까지 적용되고 있다고 본다.


미국 영화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 1951)'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계 2세들로 편성된 하와이 100대대와 442 연대전투단을 배경으로 제작됐다. 미국인 신참 소위가 처음에는 일본계 미국인 군사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지만, 점차 그들과 전우애를 쌓으며 유럽의 전장에서 함께 활약한다는 내용이다.

미국 영화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 1951)'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계 2세들로 편성된 하와이 100대대와 442 연대전투단을 배경으로 제작됐다. 미국인 신참 소위가 처음에는 일본계 미국인 군사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지만, 점차 그들과 전우애를 쌓으며 유럽의 전장에서 함께 활약한다는 내용이다.


한편 친절한 인종주의는 영화 같은 선전 수단을 통해 전파됐다. 저자는 연구ㆍ조사 과정에서 일본군 내의 조선인을 주제로 놀랄 만큼 많은 극영화가 일본에서 제작됐으며 그중 상당수는 할리우드 영화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은 백인 지휘관이 일본계 미국인들과 합심해 유럽 전장에서 공을 세우는 내용의 '고 포 브로크(Go for brokeㆍ목숨을 걸자는 의미)' 같은 영화를 내놓았다. 일본 역시 조선인 자경대와 일본군이 뭉쳐 마적단을 퇴치하는 '망루의 결사대' 같은 영화를 조선총독부 경무국의 후원 아래 여러 편 찍어댔다. 이광수 등 지식 계층 그리고 미디어도 내선일체 홍보에 열을 올렸다. 저자는 이들이 친절한 인종주의의 포용적인 측면을 확장시키기 위해 당국의 담론 생산에 자발적으로 참여했음을 객관적 시각으로 규명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일본계 미국인인 저자 후지타니는 평상시에도 반세기 전 군복과 훈장을 착용하는 일본계 노인들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이 기묘한 자긍심을 가진 퇴역군인들에 대한 호기심이 '총력전 제국의 인종주의'를 쓰도록 이끈 계기 중 하나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이 2차 대전 시기를 고찰하지만 미국, 한국, 일본을 포함한 다른 시간과 공간에 대해 사고하는 데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썼다. 오늘날까지 일본의 '젠틀한' 식민통치를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박충훈의 돛단Book] "그래도 일본이 젠틀했다"는 당신께

다카시 후지타니 지음

이경훈 옮김

푸른역사

3만8000원




박충훈 기자 parkjov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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