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8일 대한상공회의소에 혁신벤처단체협의회,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한국규제학회 등 3개 단체가 모였다. 혁신 산업계와 과학기술계, 학계를 각각 대표한 이들 단체는 규제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이 국가적 경제 위기를 돌파하고 혁신 성장을 이끄는 동력임을 선언하면서, '규제 개혁을 위한 10대 과제'를 공동 선언문 형태로 발표했다. 이날 포럼은 특별했다. 그저 신산업 분야의 규제 사례를 몇 개 발표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규제를 개선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주제 발표와 토론은 안타까움과 탄식으로 가득 채워졌고, 마지막 3개 단체의 공동 선언문 낭독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이들은 우리나라 법령 체계와 정부 주도 행정 철학의 문제점을 이야기했고, 정ㆍ관ㆍ산 연합의 규제 기득권 세력을 지목했다. 우리 사회의 혁신 수용성 부재와 혁신을 주도할 시민운동 등 대한민국 산업 규제의 구조적인 문제와 근본적인 대안을 논의했다.
필자는 3년 전 핀테크(금융+기술)산업 활성화를 위해 해당 분야의 창업자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이 오간 후 창업자는 흐느끼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오열했다. 창업 후 거의 20년 동안 핀테크 영역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혼자 동분서주했던 일과 정부 담당자를 만날 수조차 없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흐느꼈고, 왜 진작 한국시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해외로 나가지 않았을까라는 대목에서는 오열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제왕적 대통령제 안에서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그리고 현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규제 혁파를 부르짖었음에도, 왜 한국의 규제 경쟁력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가? 관료 조직의 절실함 부족, 성문법 체계의 한계, 입법 과정에서의 졸속 때문인가? 한두 가지 원인으로 귀결되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unique) 규제들이 많은 '갈라파고스 규제' 국가다." 지난해 11월 말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CCKㆍ유럽상의)의 기자회견장에서 크리스토프 하이더 유럽상의 총장이 한 발언이다. 적당한 립서비스와 외교적 수사가 많은 서양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과 미국에 비해 훨씬 규제 강도가 강한 유럽 측 발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최근 규제 전문가인 한 대학 교수는 우리나라의 규제 환경을 비판하면서, 규제의 복잡성과 논리성ㆍ일관성의 부족, 예측 가능성의 부재 등의 이유로 전 세계 최악의 환경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비단 정부만이 아니라 혁신을 지향하는 시민사회 모두 다시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 그 근본 원인을 되짚어봐야 한다. 이것은 20년째 시범사업만 진행하고 있는 원격의료의 규제를 걷어내는 일보다, 클라우드 환경을 여전히 저해하고 있는 세부 법령을 고치는 것보다, 온라인 플랫폼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산업화 시대 오프라인 규제를 개선하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다. 최근 민관의 규제 혁파에 대한 찬반 논의는 나쁜 규제와 4차 산업혁명에 동참하기 위한 혁신 간 한 판 대결이 시작된 듯하다. 이 대결의 최종 심판자는 정부나 정치권도, 공급자들의 이익단체도 아닌 소비자이고 국민이어야 한다. 한국 소비자들은 왜 일반 택시와 공유 차량을 마음대로 선택해서 타지 못하고, 공공 데이터로 창업을 꿈을 꾸면 안 되는 것인가?
혁신은 계획과 제도로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수용성에 의해 확산된다. 한국의 소비자와 국민은 합리적 규제와 혁신 사이의 균형을 조화롭게 조절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을 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사태와 관련해 수만 명에 달하는 이익단체의 집회와 정치권의 지루한 논쟁을 종식한 것도 결국 소비자이고 국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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