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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까치와 좀벌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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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을상 논변과소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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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에게 전봇대는 최적의 집터이다. 높은 곳에 있어 천적을 피하기도 쉽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아 이만한 곳이 없다. 까치는 주변의 나뭇가지나 철사 등을 물어와 하루면 뚝딱 둥지를 짓는다. 그리고 이곳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그런데 한국전력은 까치 둥지를 대대적으로 제거하는 한편, 전국의 엽사들에게 마리당 6000원씩의 포상금을 걸고 까치 사냥을 독려하고 있다. 까치집 자재로 쓰인 철사가 원인이 돼 정전 사고로 이어진다는 게 이유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죄 없는' 까치를 사냥꾼까지 동원해 총으로 잡아야 할까. 번식하고 생육하는 게 무슨 죄란 말인가. 한전은 정전 사고로 인한 피해가 워낙 막대하다는 점을 까치 사냥의 첫째 이유로 들고 있다. 짧은 정전으로도 양어장 물고기 폐사 등 지역에 따라 다양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번식력이 강하다는 것도 이유다. 인간계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까치가 죽어야 할 이유라는 것이다.

부산의 한 의대 교수가 자신이 재직 중인 의대 면접시험 문제와 모범답안을 빼돌려 이 학교 편입 전형에 지원한 아들에게 주었다. 그리고 교수의 아들은 면접 시험장에서 모범답안에 포함된 오답까지 그대로 외워 답하다 들통났다는 소식이다.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5ㆍ18민주화운동을 '광주폭동'으로, 당시 희생자들을 '종북좌파가 만든 괴물집단'으로 매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이들의 행태를 '헌법정신과 나라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고, 김진태 한국당 의원 지역구인 춘천에서는 '김진태 추방 범시민운동본부'가 결성됐다.


이 분들의 행태에 대해 한비자의 생각을 물어보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한비자의 '오두'편에 보면 여기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한비자는 이들을 나라를 망치는 '좀벌레'라고 단언할 것이다. 그는 사사로운 이익으로 나라를 망치는 인간을 '두', 즉 좀벌레라고 작명하고 이 가운데 '사이비글쟁이'와 '사이비말쟁이'를 대표격으로 분류했다. 학자나 논객으로도 번역되는 이들은 좀벌레처럼 준동하면서 거짓말과 간사한 일컬음으로 당대의 법을 의혹하게 만들고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는 것이 한비자의 진단이다. 내 아들만 합격하면 그만이어서 공정해야 할 대학 입시를 불법비리로 분탕질하는 것, 정치적으로 득이 되기만 하면 그만이어서 색깔론과 지역주의로 편을 가르는 것. 두 경우 모두 사사로운 이익으로 나라를 망치는 좀벌레의 짓이라고 보지 않겠는가.


바람 피해 집 짓고, 알 낳고 새끼 기르는 까치가 도대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인간계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더구나 까치의 경우 자기 생존을 위해 직접적이고 의도적으로 인간계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둥지의 철사가 어쩌다 스파크되는 까닭에 인간세상에 피해를 주는 잠재적 위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들에게 내려지는 처분은 에누리 없는 사형이다.

까치도 생명이고 좀벌레도 생명이다. 까치로서는 억울할 일이겠지만 까치도 인간계에 해악을 끼쳤고, 앞의 좀벌레도 인간계에 해악을 끼쳤다. 누군가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은 징치해야 할 일이다. 둘 다 생명체이고 인간계에 해악을 끼쳤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까치에게 물어보자. 이들에게 어떤 징치가 내려지는 게 평등하고 정의로운 처분인지.


류을상 논변과소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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