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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날엔…] 올림픽경기장 그리고 0.15%…‘MB·朴 시대’ 10년의 서막

최종수정 2020.02.03 16:09 기사입력 2019.02.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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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보다 뜨거웠던 한나라당 2007년 8월 전당대회…현장투표 결과 여론조사로 뒤집혀, '경선승복' 정치적 자산으로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정치, 그날엔…’은 주목해야 할 장면이나 사건, 인물과 관련한 ‘기억의 재소환’을 통해 한국 정치를 되돌아보는 연재 기획 코너입니다.


[정치, 그날엔…] 올림픽경기장 그리고 0.15%…‘MB·朴 시대’ 10년의 서막


“이럴 수가 없는데….” 개표 중간 집계 결과, 지역별 ‘표계산’이 틀린 것을 확인할 때마다 한 선거캠프 관계자들의 표정은 경직됐다. “예상과 다른 결과다.” 다른 선거캠프 관계자들도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선거캠프 핵심 관계자 쪽으로는 시시각각 최신 정보가 올라왔다. 때로는 굳은 표정으로 때로는 밝은 표정으로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었다.

승리할 것으로 예측됐던 후보 쪽도 불안감을 감추지 않았다. “누가 이길지 모르는 상황이다.” 엄살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여론조사로 나타난 지지율 차이는 있었지만 최종 개표 결과가 나와야 승패를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07년 8월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은 역대 어떤 대선후보 당내 경선보다 치열했던 승부였다. 같은 정당의 후보끼리 사생결단의 정면충돌을 벌인 이유는 ‘대선후보=유력 대통령 당선자’라는 등식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와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는 모두 승리를 자신했다. 여론조사는 이명박 후보의 우위로 나타났지만 박근혜 후보에게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은 표’가 있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났다.

당원, 대의원, 국민 선거인단 투표 결과 박근혜 후보는 6만4648표(49.39%)를 얻어 6만4216표(49.06%)를 얻은 이명박 후보보다 많은 득표를 얻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이명박 후보가 우위를 보일 것이란 각종 여론조사와는 달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분위기는 박근혜 후보 쪽이 오히려 더 뜨거운 것처럼 보였던 이유다.


하지만 현장 투표에서 앞서는 결과를 입수했던 박근혜 선거캠프 쪽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앞서기는 했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 패배의 그림자를 더 짙어지게 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론조사 득표는 이명박 후보 1만6868표(51.55%), 박근혜 후보 1만3984표(42.73%)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와 현장투표를 합한 결과 이명박 후보는 8만1084표로 49.56%, 박근혜 후보는 7만8632표로 48.06%로 최종 집계됐다. 두 후보의 격차는 1.5%에 불과했다.


[정치, 그날엔…] 올림픽경기장 그리고 0.15%…‘MB·朴 시대’ 10년의 서막



결과적으로 현장 투표는 박근혜 후보가, 최종 결과는 이명박 후보가 승리한 셈이다. 당시 이명박 후보는 상대 정당 후보와의 대선후보 가상 대결에서 3배가 넘는 지지율을 보이면서 압도적인 우위를 기록했다.


이날이 한국 정치사에서 잊을 수 없는 날이 된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 시대와 박근혜 대통령 시대를 동시에 예고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예상대로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2007년 12월 총선에서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박근혜 후보는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현장에서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지만, 의연한 자세로 정치적인 주가를 더욱 높였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들, 이제 잊어버립시다. 하루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며칠이 걸려서라도 잊읍시다. 다시 열정으로 채워진 마음으로 돌아와서, 저와 당의 화합에 노력하고, 열정을 정권 교체에 쏟아주시기 바랍니다.”


박근혜 후보의 이러한 발언은 ‘아름다운 패배’라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됐다. 이명박 후보 지지자들에게 차기 대선의 부채 의식을 느끼게 할 발언이라는 얘기다. 이번에는 이명박 후보를 밀어주겠지만 다음에는 박근혜 후보를 밀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내 여론이 형성된 계기였다.


2007년 8월20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일은 이명박·박근혜 시대의 10년 역사를 알리는 서막이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지지층 입장에서는 몇 개월 후 대통령이 될 유력 정치인이 선출된 날이자 5년 이후 대통령으로 밀어줘야 할 정치인을 인식하게 된 날이었다.


정확히 5년이 시간이 지난 2012년 8월20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자 지명 전당대회는 사실상 박근혜 후보의 독무대와 다름없었다. 여론조사 지지율 74.2%, 국민참여선거인단을 포함한 총 득표수 8만6589표(84.0%)로 대통령 후보에 선출됐다.


경쟁 후보들의 득표율은 1~8% 수준에 불과했다. 박근혜 후보는 본인의 지지층은 물론이고 당심을 확실히 끌어 모았고,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다. 5년 전인 2007년 8월20일 0.15% 차이로 아쉽게 패배했지만 깨끗하게 승복했던 정치적인 선택은 이러한 결과의 밑거름이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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