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영추문 붕괴 당시 모습. 일제는 전차의 영향으로 영추문 일부 석축이 무너졌다고 밝혔으나,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됐다는 설이 더 지배적이다.(사진=문화재청)
지난달 43년만에 개방된 '영추문(迎秋門)'은 경복궁의 서쪽 문으로 동문인 건춘문(建春門)과 짝을 이루는 문입니다. 누대가 단층이라 조촐해보이지만 단아한 모습을 간직한 이 문의 이름에는 '가을'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동양의 음양오행에서 서쪽이 가을을 의미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주로 무관들과 하급관리들이 이용하던 문으로 알려져있죠.
1894년 음력 6월21일, 당시 동학농민군 진압을 명분으로 파견됐던 일본군은 조선조정의 철군요청을 무시하고 경복궁을 기습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일본군이 영추문을 뚫고 들어와 경복궁을 점령하고 이후 이듬해 을미사변이 일어나는 등 치욕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됐죠. 이후 고종이 일본군을 피해 러시아공사관으로 몸을 피한 아관파천 당시에도 이 문을 통해 궁궐을 빠져나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두차례에 걸친 일본의 파괴를 딛고 현재 서 있는 영추문은 1975년, 원래 위치에서 45미터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재건한 것이죠.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된 이 문은 이후 43년간 청와대 외곽 경호를 맡던 경비단이 주둔하면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가 지난달에야 대중들에게 개방됐습니다. 경복궁의 4개 대문이 이제서야 모두 개방된 셈이죠. 앞으로 서촌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문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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