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게도, 이성자 화백을 그때 처음 알게 됩니다. 기념사업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의 신사동 사무실을 방문하니, 사무실 공간 대부분이 전시관입니다. 건물주이자 사업을 하는 아드님이 임대 대신에 모친 작품을 전시하는 문화사업을 하는 겁니다. 이성자의 작품 100여 점을 비롯해 사진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작품의 수준과 개성이 놀랍습니다. 파란만장한 일생과, 그 바탕 위에서 솟아난 창의적 개성에 위엄을 느낍니다. 위엄. 참 오랜만에 만나보는 예술가의 모습입니다.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보지라르 가 98번지 6층 건물. 지붕 바로 아래 한 평 남짓 작은 방.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고, 결혼생활 파경의 쓰린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남편과 아들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이역만리 프랑스에 안착한 그녀가 세 들어 살던 집이죠. 오늘 저는 이 거리에 서서 이성자의 다락방 화가 시절을 생각해 봅니다. 1951년 프랑스 파리로 무작정 떠나 와, 의상디자인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순수미술에 더 재능이 있다는 교수의 권유에 따라 화가로 다시 태어나는 그녀. 1955년엔 스승의 화실에서 떠나와 이곳 보지라르 가 98번지 6층 다락방으로 이사합니다. 하녀가 살던 방이었죠.
"내가 문학소녀라서 그런 데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라고 회고하는 그녀. 가난을 탓하지 않습니다. 캔버스 살 돈이 없습니다. 헌 침대 시트를 사서 성한 부분을 잘라 아교 칠을 해서 손수 만들어 씁니다. 프랑스 화단 데뷔작 <보지라르 가에 내리는 눈>(1956)은 이런 상황에서 태어나는 거죠. 외로운 여인은 6층 다락방에서 바라보는 집 앞 풍경을 자신의 느낌대로 표현합니다. 화면의 윗부분은 작은 집과 길 건너 고층건물들인데 어두운 톤의 단순한 면으로 처리합니다. 아랫부분은 눈 내린 마당. 흰색의 텅 빈 공간으로 남겨 둡니다. 위는 무겁고 아래는 가벼워 긴장감이 저절로 생기네요.
저는 미술의 여신에게 장차 드러날 위엄의 싹을 이 작품에서 미리 봅니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 시에 그린 작품과 겹쳐 읽히는 거죠. <세한도(歲寒圖)>. 추위가 와도 시들지 않는 소나무 잣나무의 한결같음을 그린 작품. 세상인심 다 변해도 제자 이언적만큼은 스승 대하는 마음이 한결같음을 여기 비유해서 그린 작품이죠.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 잣나무의 진가를 아는 것처럼, 사랑의 상처와 고통 뒤에야 예술이 성숙된다는 것. 두 작품에 함께 있는 예술가의 절대고독과 위엄의 패턴입니다.
회화는 색과 형태의 단순한 배치가 아닙니다. 대상의 사실적인 모방도 아니죠. 예술가의 내면 고독이 투영되어야 합니다. <보지라르 가에 내리는 눈> 속에는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킨 한 여인의 투혼이 지금도 활활 살아 있지요. '절제된 위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녀 온 지 100년 된 세상. 보지라르 가의 햇살 기우는 오후. '괜찬타, 괜찬타'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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