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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송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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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에게 집중하는 동안 당신은
태산처럼 커졌지만
다행이다
이제 나는 당신에 대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수평선에서 차오르던 노을이 횟집 간판을 물들인다
다행이다
당신을 떠올려도 나는 이제 목이 메이지 않는다
우주의 저편에서부터
기적처럼 저녁이 당도했고 그 봄날
나비처럼 사뿐히 당신은 사라졌다

사실, 이별은 아주 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이지만
오래전부터 꽃들에게 이별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에겐 다만 암묵적인 규칙이 있을 뿐이었다
어떤 경이로움이 엄습해 올 때 이를테면, 천둥과 우레 운무 같은 것까지
그들은 그것들을 꽃의 안쪽으로 들여놓는다

바닷가 언덕을 하루 종일 걸었다

세월은 충분히 깊어졌다, 무릎이 다 젖을 때까지
[오후 한 詩]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송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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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인과관계 순서로 글을 쓴다. 즉 원인을 앞에, 결과를 그 뒤에 적는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문장상의 차례를 보통 시간적 선후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서사는 이를 존중하면서 사건을 전개한다. 이에 비해 시를 이루는 서정은 대개 시간의 개념이 약하거나 아예 없다. 서정은 어떤 상태의 지속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에 쓰인 문장들은 적힌 순서와 상관없이 문면 여기저기에서 서로를 비추고 북돋는다. 예컨대 "이별은 아주 먼 데서 온 택배 같은 것"이라는 문장은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들에 대한 앞선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이 문장은 "어떤 경이로움이 엄습해 올 때", "천둥과 우레 운무 같은 것"과 한데 엉켜 독특한 의미를 구성한다. "택배"는 "엄습", "천둥과 우레 운무"와 동일 계열로 '갑자기 들이닥친다'는 뜻을 공유한다. 그러나 '천둥 등'은 "어떤 경이로움"이라는 상태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에 따라 '이별'도 예기치 않은 난감한 사태를 넘어 전혀 다른 영역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시를 읽는 일은 "무릎이 다 젖을 때까지" "바닷가 언덕을 하루 종일" 걷다가 문득 마주치는 '경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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