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희의 갤러리산책] 피카소는 왜 뒤샹에게 틀렸다고 했나
'마르셀 뒤샹전·피카소와 큐비즘'…서울에서 만나는 두 거장의 작품
1912년 큐비즘으로 첫 인연…난해·어두움 닮았지만 이후 다른 행보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2012년 8월25일 덴마크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에서 '파블로 피카소/마르셀 뒤샹'전이 개막했다. 전시회 제목은 '그가 틀렸다(He Was Wrong)'였다.
그가 틀렸다는 1968년 뒤샹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피카소가 내뱉은 첫 마디다. 구차하기 짝이 없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통하는 피카소가 어떤 이유로 뒤샹이 죽은 후 그를 부정했을까. 스톡홀름 현대미술관은 그가 틀렸다 전시를 하면서 피카소와 뒤샹의 첫 만남이 있은 지 정확히 100년이 되는 해라고 설명했다.
피카소와 뒤샹은 1912년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스물다섯 살의 뒤샹은 큐비즘(입체파) 화가들과 교류했다. 피카소는 뒤샹에게 이듬해 미국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출품을 제안했다. 둘은 처음 만났을 때 그림 그리는 방식에서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뒤샹은 1912년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를, 피카소는 '남자의 두상'이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고 색채가 어둡다는 면에서 묘하게 닮았다.
두 작품을 서울에서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에서 뒤샹 사후 50주년을 회고하는 '마르셀 뒤샹전'을 하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한가람 미술관에서 '피카소와 큐비즘'을 전시 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이지회 학예연구사(35)는 "당시 뒤샹은 20대 초반이었고 일종의 학습기였다. 인상주의, 야수파 등으로 화풍을 빠르게 바꾸며 그림을 그렸다. 뒤샹이 큐비스트로 활동한 시기는 매우 짧다. 하지만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는 뒤샹이 세계적 명성을 쌓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작품"이라고 했다.
뒤샹이 피카소의 제안대로 이듬해 미국에서 열린 전시회에 내놓은 작품이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2'였다. 낡은 무기고에서 시작된 이 전시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아모리 쇼'이고 뒤샹은 큰 성공을 거둔다.
'피카소와 큐비즘'의 장혜진 큐레이터(25)는 남자의 두상에 대해 "피카소의 초기 큐비즘을 논의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중요한 작품"이라고 했다. 큐비즘의 시작은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그린 1907년으로 본다. 남자의 두상에서는 사물의 해체가 극에 달한 모습이다. 장 큐레이터는 "피카소가 그린 수많은 작품 중에서 대상을 여러 관점에서 분할한 분석적 입체주의 표현기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면서도 종합적 입체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성격의 작품"이라고 했다. 분석적 입체주의는 대상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게 분석·분할해 재구성한다. 색채의 사용도 지극히 절제한다. 종합적 입체주의는 지나치게 난해했던 분석적 입체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났다. 대상의 모습은 한결 간결해지고 색깔도 다양해진다.
피카소와 뒤샹은 이후 다른 행보를 보인다. 뒤샹은 1912년 입체파 화가 페르낭 레제,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와 함께 파리항공살롱에 참석하는데 웅장한 항공기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뒤샹은 "회화는 끝났다. 저 프로펠러보다 더 나은 것을 누가 만들 수 있겠어?"라고 묻는다. 이지회 학예연구사는 "당시 다양한 발명품이 나오고 산업 발전이 급속하게 이뤄진 산업주의가 팽배한 시기였다. 뒤샹은 예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굉장히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후 뒤샹은 회화 기법을 포기하고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만드는 일명 '레디메이드'에 주력한다. 1913년 레디메이드의 첫 작품에 해당하는 '자전거 바퀴'를 만들었고 1917년에는 미국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서 큰 파장을 낳은 '샘'을 출품했다.
피카소는 큐비즘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고전주의에 심취했다. 그리는 양식은 큐비즘을 유지하지만 모티브는 고전의 그림에서 따오는 방식이다.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은 역대 최고가 경매 작품으로 유명한데 외젠 들라크루아의 '알제의 여인들'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그린 작품이었다.
피카소는 천재로 불렸지만 뒤샹은 혁명가로 통한다. 예술의 개념을 바꾸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뒤샹이 피카소에게는 불편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이지회 학예연구사는 "뒤샹은 전 생애를 통해 하나의 정체성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깨뜨리면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도전했던 사람이다. 뒤샹은 살아있을 때 50년, 100년 뒤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고 했다. 피카소 전기 작가인 존 리처드슨은 피카소는 뒤샹을 더 선호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아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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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은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함께 뒤샹전을 한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은 1950년대 뒤샹의 작품을 기부 받아 뒤샹의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미술관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여행가방 속 상자(1941년 에디션)' 작품을 포함해 150여점이 전시된다. '자전거 바퀴', '샘' 등 뒤샹의 대표작이 총망라됐다. 뒤샹이 젊은 시절 다양한 화풍의 회화를 그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피카소와 큐비즘'전은 피카소가 아닌 큐비즘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장 큐레이터는 "피카소와 함께 입체파의 4대 화가로 일컬어지는 조르주 브라크, 로베르 들로네, 페르낭 레제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다. 큐비즘의 대명사가 피카소이긴 하지만 피카소 외 큐비즘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큐비즘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피카소와 큐비즘전의 마지막인 5관에서는 가로, 세로 5m가 넘는 로베르 들로네와 그의 아내 소니아 들로네의 거대한 작품을 볼 수 있다. 80년 만에 파리시립근대미술관 밖으로 공개된 작품들이다. 다른 전시관과 달리 사진 촬영을 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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