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리 퀴리'
흐느끼는 마리가 시선을 둔 곳에 한 줄기 빛이 새어나올 뿐, 어두운 무대는 무겁게 마리를 짓누른다. 빛의 끝자락에 마리가 사용한 실험 도구와 책상이 주인을 잃은 채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그마저도 반쯤 어둠 속에 가려 관객들의 시선은 오로지 마리로 향한다. 무거운 침묵. 흐느끼던 마리가 일어나 솔로 넘버 '왜'를 부른다. 뒤늦은 후회가 담겼다. "그때 나 너를 잡았더라면 여기 있을까."
피에르와 마리는 법정에서 라듐의 위해성을 알리는 증언을 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했다. 피에르는 라듐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증언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마리는 라듐의 각종 질병 치료 효과에 대한 임상 시험이 끝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한다. 효과를 증명하기 전에 위험한 물질이라는 선입견이 씌워져서는 안 된다며, 세상에서 내동댕이쳐지는 선입견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느냐면서…. 마리는 끝내 피에르를 잡지 않는다. 자신도 라듐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은 퀴리 부부의 라듐 발견과 노벨물리학상 수상 장면으로 시작한다. 라듐이 암을 비롯해 각종 질병 치료에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임상 시험도 진행된다. 하지만 시계공장 여공들이 이가 썩고 턱이 부서져 죽음에 이르면서 라듐의 위해성 논란이 생겨난다. 라듐은 밝은 빛을 내기에 시계 침에 바르면 어두운 곳에서도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뮤지컬 속에 나오는 시계공장 여공들이 사망한다는 내용은 '라듐 걸스'로 알려져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실제 라듐의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았던 초기에 많은 여공들이 시계 침에 라듐을 정확하게 바르기 위해 혀로 붓끝을 가늘게 모은 뒤 시계침을 칠했다. 이 과정에서 라듐에 노출돼 사망한 여공 숫자가 50명이 넘는다.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마리와 피에르가 법정 증언을 두고 충돌하는 부분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라듐 걸스'가 첫 소송을 제기한 시기는 1925년이고, 피에르는 1906년 마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작가 천세은은 마리의 과학자로서의 고뇌를 드러내기 위해 피에르의 법정 증언을 허구로 만들어냈다. 이 허구는 뮤지컬의 갈등을 극적으로 만드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마리가 가장 의지한 남편과 의견 충돌을 빚으면서 과학자로서 마리의 고뇌와 그의 인간적 면모를 잘 드러낸다.
극에서 마리는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피에르가 잠시 바람을 쐬자고 해도 마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느 날 피에르가 정글북의 내용을 들려주며 시간이 날 때 꼭 읽어보라고 권하지만 마리는 실험을 계속 하며 다음 내용도 피에르 당신이 읽어주면 되지 않느냐고 한다. 190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 장면에서 마리가 실험을 주도했음에도 피에르에게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된다. 마리는 개의치 않는다. 자신은 연구만 계속 할 수 있으면 그 뿐이다. 실제로 마리의 생애 역시 그랬다. 그녀는 평생 연구한 방사선에 노출된 후유증으로 1934년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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