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햇볕 장마당 법치'
中 덩샤오핑식 '사회주의 법치'
개혁·개방 표방하며 경제 탄력
北 김정은 개인 통치부터 바꿔야
개성공단 보며 변화의 단초 경험


햇볕 장마당 법치 표지

햇볕 장마당 법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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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중국의 혁명가이자 초대 주석을 지낸 마오쩌둥(毛澤東)은 1957년 모스크바를 방문해 "중국은 15년 내 철강제품과 기타 주요 공산품에서 영국을 따라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후 수년이 지났지만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가공할 만한 생산력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존심과 낙관주의에 기대어 한 말일 테다. 서방을 따라잡겠다고 공언한 뒤 중국으로 돌아와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마오는 인민공사를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200~300호 규모의 농가가 함께 설립한 집단농장이 농촌의 주된 생산단위였는데 인민공사에서는 규모를 10배 이상 늘려 4000~5000호를 한 단위로 묶었다. 원래 토지와 농기구는 개인 소유였는데 인민공사 소유로 바꾸기도 했다. 마오가 현지 시찰과정에서 곡식을 쪼아먹는 참새를 보고 '해로운 새'라고 하자 모든 농민이 참새잡이에 동원된 일화, 철강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농사는 뒷전으로 하고 각 가가호호 집 뒤뜰에 작은 용광로를 만들어 철강생산에 몰두한 일도 있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의 인치(人治)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1세기 중국을 비롯한 현대 문명국가 대부분은 법치(法治)국가을 표방하며 실제 법에 의한 다스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중국의 전통에서 법치의 뿌리를 얘기하자면 춘추전국시대 법가가 꼽힌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수천년 헤게모니를 쥔 것은 법가가 아니라 유가였다. 법이 아니라 인(仁)과 예(禮)로 다스리는 게 옳다고 본 것이다. 과거 중국의 주요 나라도 법전을 편찬하는 등 명문화된 법이 있긴 했으나 법에 의한 다스림 자체에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서구 문물이 유입된 19세기 후반 근대적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건 세력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마오가 이끄는 중국 공산당이 패권을 거머쥐었고 '인민민주주의', '인민독재'를 축으로 하는 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된다. 1960년대 문화혁명 때 추방되거나 처벌받은 이 대부분은 합법적인 행정력에 따른 조치가 아니라 마오의 판단에 따른 희생양으로 역사는 전하고 있다.


이후 덩샤오핑에 의해 중국 고유의 '사회주의 법치'가 첫발을 뗐다. 위로부터의 변화였지만 개혁ㆍ개방경제를 표방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천안문사태 당시 덩이 서구식 법치ㆍ민주주의를 거부하면서 개혁ㆍ개방이 후퇴하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있었지만 도리어 3년 후 개혁ㆍ개방을 강화키로 하면서 법률에 기반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주창했다. 과거 금융경제연구소에서 연구위원으로 있다 지금은 주간지 시사인에서 국제경제팀장으로 있는 이종태 기자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법치주의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해외투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외국자본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사회 구성원간 이해관계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지니 중국 공산당마저 법치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고 지적했다.



시장경제 도입시스템 개혁 필요
2000년대 들어 자본주의 색채 짙어져
법률로 사회 다스릴 때 진정한 변화


이 기자가 최근 펴낸 '햇볕 한마당 법치'는 북한을 바라보고 분석한 저자 고유의 시각과 함께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긴 실천서에 가깝다. 우리는 저마다의 개인일 수도 있고 정부 당국자 혹은 민간 기업일 수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자 지도자로 있는 김정은 개인이 통치하는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자리 잡고 발전할 수 있는 법ㆍ제도를 도입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 덩샤오핑이나 근래의 시진핑이 언급했던 의법치국(依法治國)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다소간의 이견이 있는 데다 그러한 국가통치의 근거를 특정인물이 내세운 것 자체가 아이러니긴 하지만 과거와 같은 야만이 줄고 국민 대다수가 경제발전의 수혜를 누린다는 점에서 보면 문명의 진전으로 보는 게 맞을 테다.


북한을 바라보는 데 있어 중국을 투영하는 건 우리가 이미 개성공단을 통해 변화의 단초를 겪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선 과거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부터 '생존을 위해' 인민들 사이에서 시장이 생겨났다. 중국 접경지대를 중심으로 식량이나 생필품이 오가면서 암시장이 형성됐고 2000년대 들어선 단순히 생계를 넘어 이윤을 추구하는 생산, 즉 자본주의의 씨앗으로 불릴 만한 현상이 곳곳에서 불거졌다. 돈을 빌려주고 이윤을 챙기는 돈주가 있었고, 이 돈주는 직접 생산활동을 위한 조직을 갖추기도 했다. 북한 당국은 초기 상인과 암시장을 단속했지만 오래지 않아 손을 들었다. 국영상점의 가격을 암시장 시세에 맞추거나 임금을 올린 2002년 7ㆍ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듬해 암시장을 합법화한 종합시장 개설은 시장의 승리를 상징하는 셈이다.


남북 합작으로 추진했던 개성공단의 경우 북한 당국이 공유재산인 토지를 민간에게 사적 수익 추구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식 허용한 첫 사례였다. 남측 관리위원회가 고안한 규범이 공단 내에선 법률로 통용됐고, 개성공단에서 익힌 법ㆍ제도는 나선특구 등 북한 내 다른 경제특구에 적용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기업이나 개인이 장기간 토지에 대한 배타적 사용권을 인정한 부동산관리법이 제정됐다. 저자는 "북한은 이제 겨우 경제 관련 법제도 몇 개를 도입하고 있는 정도로 법치라 할 수준에는 한참 멀다"면서도 "앞으로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토지이용권 허용은 재산권을 허용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며 다양한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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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로 한반도 위기가 팽배해있는 2017년, 교류ㆍ협력을 기반으로 한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은 채 절반의 지지도 이끌어내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트럼프와 시진핑, 아베, 푸틴 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지도자가 하나같이 '강한' 이미지를 원하는 작금의 상황은 한반도에 사는 대다수 사람의 운명이 외부에 맡겨진 게 아닌가하는 절망감도 안겨준다. 개성공단을 통해 유입된 달러와 북핵 개발과의 강한 연계성을 정부 최고위 당국자가 거리낌 없이 밝혔다 이내 번복한 게 불과 2년이 채 안됐다.


저자는 마지막 절('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북한이 인민의 자유를 증진시키고 법률로 사회를 다스릴 때 북한의 변화는 이뤄진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북한이 그런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만들고 그 길로 유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상당히 긴 세월과 인내심이 필요한 프로젝트"라면서 "몹시 까다로운 길이지만 유일한 길"이라고 끝을 맺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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