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건수 총 2670건"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20일 중간 조사결과 발표

[이미지출처=연합뉴스]문화계 블랙리스트 중간조사 결과발표 (서울=연합뉴스) 김주형 기자 =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송경동 간사가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빌딩에서 기자 브리핑을 열고 조사 결과를 중간발표하고 있다. 2017.12.20 kjhpress@yna.co.kr (끝)<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피해건수가 총 2670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올해 초 특검 조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통해 밝혀진 400여건에 비해 6배 이상 많은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민관합동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는 20일 서울 종로구 KT빌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사 가운데 실제 검열이나 지원 배제 등의 피해를 본 문화예술인은 1012명, 문화예술단체는 320곳으로 조사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날까지 집계된 피해건수는 개인이 1898건, 단체가 772건 등 총 2670건이다.

이날 진상조사위는 조사신청 결과 및 블랙리스트 관련 자료를 종합분석하고 새롭게 확인된 사건에 대한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2008년 8월27일 만들어진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부터 2017년 7월 서울중앙지법이 블랙리스트 사건 판결문에 첨부한 범죄일람표까지 10여년에 걸쳐 작성된 블랙리스트 문건 12건에 대한 중간 조사결과다.

앞서 진상조사위는 지난 8월31일부터 11월30일까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또는 관련 단체들의 조사신청을 받았다. 가장 많은 제보와 조사신청이 접수된 분야는 연극, 무용 등 공연 분야(51건)였으며, 이어 영화(33건), 문학(18건) 분야 순으로 조사신청건수가 많았다.

진상조사위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지원배제와 관련해 특검수사와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블랙리스트 의혹이 조사신청을 통해 추가로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인 1012명 중 475명(47%)은 박근혜 '시국선언 명단(9788명)'에 포함된 인물이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537명(53%)은 별도의 리스트로 관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상조사위는 문화예술인과 문화예술단체 블랙리스트 명단이 공문서와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작성돼 활용된 것으로 확인했다.

진상조사위는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문화예술인을 비롯한 좌파 성향 인사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과 블랙리스트 구축이 이뤄진 정황도 파악했다. 또한 문자메시지 분석을 통해 문체부 직원이 국가정보원 및 경찰청 정보국 간부와도 블랙리스트 관련 사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 사실도 확인했다.

민간단체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 출신의 정치인이 도지사나 시장으로 있던 충청북도, 전주시, 안산시, 성남시도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진상조사위는 전했다.

진상조사위는 "블랙리스트에 2000년 '안티조선 지식인 선언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사까지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각종 시국선언에 동참한 사람에 대한 검열과 지원 배제 시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체부 산하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특정 예술인의 지원을 배제한 양상도 드러났다.

출판진흥원은 2016년 저작권 수출을 위해 초록을 번역하는 사업을 수행하면서 심사표를 조작해 '차남들의 세계사' '삽살개가 독에 감춘 것' '텔레비전 나라의 푸푸' '한국이 싫어서' 등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진흥원은 '찾아가는 중국 도서전'을 진행하면서도 위탁도서 선정 과정에서 회의록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2015년 블랙리스트에 오른 '극단 마실'이 뉴욕문화원과의 매칭 사업에 선정되자 이 사업을 폐지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민족미술인협회·한국작가회의·우리만화연대·서울연극협회 등 블랙리스트에 오른 단체가 선정된 사업을 중단했다.

이 외에 청와대와 국정원을 통한 문체부 산하기관 및 지역 문화재단들에 대한 부당 인사개입과 배제 등의 피해도 파악됐다.

진상조사위는 "이번 조사결과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지원 사업 배제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검열의 형태로 체계적으로 작동되었음을 보여준다"면서 "피해 정황이 구체적이고 사실관계 파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의 경우 진상조사위 직권으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진상조사위는 내달 17일부터 이틀간 콘퍼런스를 열어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사항을 마련할 방침이다.

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