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르미타시박물관展, 국립중앙박물관 내년 4월 15일까지
26년 만에 함께 특별전…입구부터 러 박물관 옮겨놓은 듯
예카테리나 2세 소장품 34점, 푸생·모네 등 佛화가 89점

예카테리나 2세 초상

예카테리나 2세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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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독일 출신의 황후 예카테리나 2세(1729~1796)는 1762년 궁정혁명을 통해 남편 표트르 3세를 몰아내고 즉위해 34년 동안 러시아를 다스렸다. 여제의 본명은 소피야. 어릴 때부터 지적 호기심이 왕성했던 그녀는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구사는 물론 무용, 음악, 문학, 역사 등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1744년 어머니와 함께 러시아로 건너간 그녀는 배우자의 나라를 문명화시킨다는 사명으로 학문과 예술을 발전시키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예카테리나 2세는 궁전 자체를 '지식의 보관소'로 보여주고 싶었다. 대대적인 미술품 수집도 이 때문이다. 1918년까지 러시아의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을 향한 창'이자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표트르 1세의 딸인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의 재위기간에 많은 궁전이 들어섰는데, 그중 겨울궁전이 가장 화려했다. 건설기간만 8년. 1762년 완공됐을 때 주인은 예카테리나 2세였다. 겨울궁전 가까이에 '은자(隱者)의 집'으로 불린 작은 별궁을 만들어 예술품을 수집·보관했다. 이것이 오늘날 예르미타시박물관이 됐다. 현재는 약 300만 점 소장품을 자랑하는 박물관으로 성장했다.


예르미타시박물관 겨울궁전 전경[사진=Pavel Demidov]

예르미타시박물관 겨울궁전 전경[사진=Pavel Demid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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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르미타시박물관 겨울 궁전 내부(대사의 계단) [사진=Pavel Demidov]

예르미타시박물관 겨울 궁전 내부(대사의 계단) [사진=Pavel Demid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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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 '예르미타시박물관전, 겨울 궁전에서 온 프랑스 미술'이 내년 4월 1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다. 지난 19일 문을 연 전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예르미타시박물관과 함께 진행한 소장품 전으로 1991년 이후 26년 만이다.


이번 전시는 특별히 예카테리나 2세가 사랑한 프랑스 미술 명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예르미타시박물관은 프랑스를 제외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프랑스 미술품을 보유했다.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한 17~18세기 프랑스 회화부터 20세기 초 러시아 기업가들이 구입한 인상주의 회화까지 프랑스 회화, 조각, 소묘 여든아홉 점을 공개한다. 250년 동안 겨울궁전에 간직한 프랑스 미술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출품작 대부분은 예카테리나 2세의 소장품(34점)이다. 당시 계몽군주를 자처한 예카테리나 2세는 프랑스의 동시대 저명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유럽의 컬렉션을 구입했다. 그녀의 미술품 수집 열정은 귀족들에게로 이어져, 18세기 말 이후 많은 프랑스 작품들이 러시아 공공건물과 상류층 저택을 장식했다. 소장품은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1917년) 이후 국유화됐다.


전시장 전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장 전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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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전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전시장 전경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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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왜 프랑스 미술을 이토록 선망했을까? 17세기 이후 유럽의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프랑스는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러시아의 사회적 인식, 정치,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3세기 이상 문화영역에서 프랑스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300년 전인 1717년 표트르 대제가 파리를 방문한 후부터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이어왔다.


세르게이 안드로소프 예르미타시박물관 서유럽미술부장(69)은 "18세기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러시아에선 프랑스어가 제 2의 언어였다.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 러시아로 수많은 프랑스 화가들이 유입됐다. 나폴레옹전쟁(1793~1815)을 비롯한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문화 교류는 지속됐다. 이번 서울전은 박물관이 해외에서 여는 프랑스 미술전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했다.


전시장 입구부터 예르미타시박물관의 건축 요소를 본떠 실제 내부처럼 공간을 조성했다. 박물관이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시 풍경을 그대로 영상, 사진, 터치스크린 으로 구현해 마치 현장을 방문해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전시는 예카테리나 2세를 비롯해 여러 귀족들이 수집한 작품을 고전주의부터 인상주의까지 프랑스 미술사적 흐름에 따라 배치했다.


전시관을 꾸민 이현숙 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이너(39)는 "예르미타시박물관을 접하기 어려웠던 국내 관람객들을 위해 내부를 일부 재현하거나 재해석했다. 야외광장부터 로비와 회랑을 거쳐 첫 홀에서 예르미타시의 17세기 명작들을 만난다는 콘셉트로 배치했다. 배경음악도 러시아 음악가들의 작품으로 채웠다"고 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니콜라 푸생의 '십자가에서 내림(1628~1629)'과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니콜라이 구리예프 백작의 초상(1821)' 등이다. 각각 17세기 고전주의와 19세기 신고전주의를 대표한다.


니콜라 푸생, 십자가에서 내림, 1628~1629, 캔버스에 유채,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니콜라 푸생, 십자가에서 내림, 1628~1629, 캔버스에 유채,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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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니콜라이 구리예프 백작의 초상, 1821, 캔버스에 유채,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 니콜라이 구리예프 백작의 초상, 1821, 캔버스에 유채,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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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서 내림'은 예카테리나 2세가 1764년 독일로부터 대량으로 작품을 구입할 당시 포함됐던 작품으로 컬렉션 중에서도 가장 이른 시기에 수집됐다. 전시 기획을 담당한 김승익 전시과 학예연구사(39)는 "푸생의 작품은 바로크 회화의 역동적인 인물 형태나 강렬한 명암대비보다 훨씬 더 안정되고 절제된 독특한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앵그르의 초상화는 박물관 소장품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힌다. 그림의 주인공인 니콜라이 구리예프(1751~1825)는 러시아 귀족으로 프랑스원정에 참전한 군인이자 외교관이었다. 1820년 아내와 신혼여행을 떠나 이탈리아에 머무르던 그는 앵그르에게 초상화를 부탁했다. 앵그르의 그림은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와 매끄러운 표면, 뚜렷한 윤곽선 처리 등이 특징이다. 프랑스 화가가 그린 러시아 귀족의 그림으로 이번 전시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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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기본적으로 프랑스 미술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 녹아든 러시아 예술의 잠재적인 힘을 엿볼 수 있다. 러시아는 프랑스와 교류하면서도 그 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했다. 김승익 학예연구사는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품 중 프랑스 미술을 소개하는 이유는 19세기 전성기를 누린 러시아 문학과 미술, 음악 등 러시아 근대문화에 미친 중요한 특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베르 로베르, 콜로세움, 캔버스에 유채, 1761-1763,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위베르 로베르, 콜로세움, 캔버스에 유채, 1761-1763,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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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1886, 캔버스에 유채,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클로드 모네,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1886, 캔버스에 유채, 예르미타시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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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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