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재계 반쪽소통] 오라해서 갔더니 다음에 봅시다…만나면 협조요구만
8월 31일 대한상의에서 열린 산업부장관과 상의 회장단 간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정진행 현대차 사장(앞줄 왼쪽 세번째부터), 백운규장관, 박용만 상의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재계는 김현철 경제보좌관과 8대 그룹 간 비공개 간담회가 취소된 것을 아쉽게 생각하면서도 이를 계기로 정부와 재계의 소통방식에도 질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7개월여간의 소통은 정권 초기라는 점을 감안하더라고 정부 주도의 일방향 커뮤니케이션으로 진행돼 왔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기업경영이 분ㆍ초를 다투는 전장(戰場)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을 정부당국자들이 충분히 인식해 기업인과의 만남이 보여주기식ㆍ생색내기식 쇼통(show+通)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靑과의 소통 불발, 아쉽다
김현철 경제보좌관은 대표적인 일본통(通)으로 한일 양국 경제와 기업의 현실을 잘 안다. 일본에서는 신일본제철과 후지제록스, 닛산, 다이하츠 등의 마케팅 교육과 자문 등을 담당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SK텔레콤, LG CNS, 제일모직, 이모레퍼시픽 등의 자문교수를 역임해 대기업과의 인연도 많다. 재계 관계자들은 "경제정책과 대기업 현안을 두고 청와대와 허심탄회한 소통의 자리를 기대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한중 관계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후속 논의도 예상됐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경제정책과 대기업 현안을 두고 청와대와 허심탄회한 소통의 자리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면서 "금명간 일정을 다시 조정해 대화를 나누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문 대통령이 사드보복 철회를 공식화하고 현대차 충칭공장을 방문해 "중국 시장을 석권하기를 기대한다"며 현지 임직원들을 격려한 것에 크게 고무된 상태다. 4대 그룹 임원은 "문 대통령의 두 차례의 기업인 간담회와 미국, 동남아, 러시아, 중국 등의 잇단 방문을 동행한 기업인들로서는 대통령의 경제외교의 덕을 톡톡히 봤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은 뛰는데…장관 행보에 일부선 “허탈”
문 대통령이 기업과의 소통을 강조한 이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의 각료들도 산업계ㆍ재계와의 소통을 늘리고 있다. 현장에서는 반쪽 소통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소통창구를 상공업계를 대표하는 대한상의로 일원화시키면서 전국경제인연합회와 경영자총협회가 담당했던 재벌개혁과 노사관계에서 기업의 목소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장관들의 갈지자 행보도 도마에 올랐다. 산업 진흥을 담당하는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자동차ㆍ조선ㆍ철강ㆍ석유화학ㆍ반도체 등 주요 업종을 순회하며 간담회를 가졌지만 기업인 200명이 참석하는 상의 주최 최고경영자(CEO) 조찬간담회는 9월과 12월 두 번 연속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취소했다. 지난 6일 예정이던 간담회도 예고에 없던 산업혁신 민관전략회의로 다시 무산됐다. 이 회의는 산업부와 대한상의, 무역협회가 공동으로 개최해 박용만 회장과 김영주 회장이 참석했다. 오전 8시30분에 끝나지만 백 장관은 오전 8시30분에 시작하는 김 부총리 주재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이유로 중간에 자리를 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경우 상의를 통해 4대 그룹과 만난 뒤 변화를 보여달라며 자율개혁을 주문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공익재단ㆍ지주사를 전수조사하고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조사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고충은 듣지만 고충해소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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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지난 7월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듣는 동시에 기업의 고충을 해소해주는 게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서비스"라고 강조했지만 고충해소는 요원하다. 재계는 그동안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에너지ㆍ미세먼지ㆍ화학물질 대책 등은 산업계의 현실을 고려하고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개혁과 노동개혁 등을 주문했다. 공정위는 4대 그룹에 자율개혁을 주문하면서도 공익재단ㆍ지주사를 전수조사하고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조사 강도를 높이고 있다. 산업부는 영국을 계기로 원전수출에 나서겠다고 하면서도 안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고 산업계의 원가경쟁력의 하나인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자동차업계가 강성노조의 파업을 우려하고 있지만 정부부처 어디에서도 파업 자제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반쪽 소통이 제도와 정책, 규제와 진흥이 분리됐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비정규직 대책을 예로 들면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화하라는 것은 정책이지만 정규직 채용을 꺼리게 만드는 경직적 노동시장을 유연화는 것은 제도의 문제"라면서 "제도 혁신이 필요한 부문에 제도를 그대로 두고 정책으로 접근하는 것은 미봉책이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고 말했다. 박수영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정책의 계획에는 규제 강화는 있고 기업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면서 "기업활성화법과 기업규제법은 그 이념과 목적에 따라 상호보완작용을 하며 적절히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집권 2년차를 맞는 내년부터는 정부와 기업이 필요하면 언제든 만나는 상시창구를 활성화하되 '정부의 요구와 기업의 화답'이라는 답습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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