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성호 기자]'말에는 신뢰가 있어야 하고 행동에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言必信 行必果)."
공자가 제자인 자공에게 선비의 조건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언필신 행필과'는 공자가 제시한 선비의 덕목 중 가장 낮은 단계였다. 최소한의 기본자질이라는 의미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 이 고사성어를 인용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꾸짖듯 훈계해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고사성어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당정 고위관계자들의 말장난에 가까운 허언이 언어도단 수준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선전이라도 해석의 차이 정도에 멈춰야 한다. 정치는 '말'이다. 정치인들의 언어가 신뢰를 잃는다면 어떤 행동에도 좋은 결과가 따를 리 없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역대 사상 최고의 수출호조는 문재인 정부에서 편성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 집행이 토대를 제공했다"고 자화자찬했다.
과연 그럴까. 추경안은 지난 7월 22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예산이 쓰인 곳은 공무원 증원과 세대별 맞춤형 일자리, 소상공인지원, 일자리 기반 서민생활안정, 지방재정 확충 등이었다. 어떤 추경예산이 역대 사상 최고 수출의 토대가 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교묘(巧妙)해 보이지만 사실은 기묘(奇妙)한 논리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주거복지로드맵을 공개하면서 "집 주인은 정당한 '사회적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비장하게 밝혔다.
김 장관이 말한 '사회적 책임'이 무엇일까. 다주택자가 임대료(월세ㆍ전세) 인상을 스스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김 장관의 소신대로 거주용 주택을 빼고는 다 팔아야 한다는 것인가. 정부 방침대로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에 적극 참여하라는 취지라고 이해한다고 쳐도 지나치게 앞서 나간 언어다.
전국의 다주택자는 전체 주택 소유자 중 14.9%였다. 하지만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1급 이상 공직자 655명 중 다주택자는 275명으로 41.9%였다.
부처별로 보면 김 장관이 수장으로 있는 국토교통부 1급 이상 관료들의 다주택 비율은 41.9%로 대통령 경호처(66.7%), 교육부(60.3%)에 이어 3위였다. 다주택자 중 40%는 강남 4구(강남ㆍ서초ㆍ송파ㆍ강동)에 집을 보유하고 있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훈계하듯 '사회적 책임'을 운운할게 아니라 정부 1급 이상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먼저 집을 팔라고 설득했어야 맞지 않을까.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7월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활동을 신고리 5ㆍ6호기 건설 문제에 국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론화위는 건설 지속 건의와 함께 탈원전 의견이 우세하다는 내용도 결과발표에 포함시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며 탈원전 정책을 공고히 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이다.
문 대통령은 낙하산 인사를 없애겠다고 수 차례 공언했다. 그렇다면 공공기관장에 현 정권 개국공신들이 속속 입성하거나 그 준비를 하고 있는 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캠코더(캠프ㆍ코드ㆍ더불어민주당 출신) 낙하산 인사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한국폴리텍 대학 이사장에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선임되는 것과 관련해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사장은 수업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부와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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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텍 대학은 그동안 관료와 정치인들의 낙하산 인사 적폐로 지적받아 온 곳이다. 김 장관 발언은 적폐도 현 정권에 필요하다면 적폐로 보지 않는다는 '위선'이다.
정치적 언어와 행동의 생명은 서서히 꺼지지 않는다. 임계치를 넘는 순간 '갑자기' 죽음의 순간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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