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11]징기스칸
가수 조경수는 몰라도 배우 조승우는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 같다. 둘이 부자지간이라는 사실. 검색어 순위에 오르지 않는 이상 잘 알려지지 않는 내용이다. 조경수가 유명 가수가 된 이유, <징키스칸(Dschinghis Kahn)> 때문이다. (번안곡이다. 조경수는 빌리지 피플(Villiage People)의 <와이엠씨에이(YMCA)>도 불렀다.) 그 시절, 요즘 말로 ‘중딩’들도 따라 불렀던 노래. 영어 가사에 춤까지 곁들여 합창했던 노래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빌리 진(Billie Jean)>, 서바이버(Survivor)의 <호랑이의 눈(Eye Of The Tiger)>, 왬(The Wham)의 <마지막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 <징기스칸>도 취한 듯 합창했다. 후, 하, 후, 하, 징~ 징~ 징~ 기스칸…… 그들의 히트곡 제목이다. <모스코우(Moskau)>, <롬(Rom)>,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마추 피추(Machu Picchu)>, <마타 하리(Mata Hari)>, <로렐라이(Loreley)>, <하치 할레프 오마르(Hadschi Halef Omar)>, <피스톨레로(Pistolero)> 등등.
1979년에 데뷔한 독일의 혼성 보컬 그룹 징기스칸의 음악은 신난다. 재미있다. 이들의 노래는 듣는 것도 좋지만 보는 것이 훨씬 즐겁다. 간단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퍼포먼스를 시청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마약 노래’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많은데, 단순하지만 묘한 매력을 뿜 뿜 뿜어내는 이들의 노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리라. 대중적이라는 평가가 딱 맞다. 대중음악이 반드시 예술성을 갖춰야 할 필요는 없다. 대중성은 음악에서 폄훼할 가치가 아니다. 후렴구가 들려온다. 두 주먹을 쥐고 팔을 아래로 한 번씩 내지른다. “징, 징, 징” 소리마다 왼쪽으로 왼팔을 쭉, 오른쪽으로 오른팔을 쭉, 쭉, 뻗는다. 좌우로 한 번씩 다리에 힘을 주면서 몸을 출렁출렁 움직인다. 아이돌 그룹의 기예에 가까운 댄스가 아니어서 더 좋다. 흥겨움의 전염병 ‘창궐’. ‘댄스 뮤직’이다. 디스코 팝(disco pop)이 이것이다. 201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디스코테카 80’(Discoteka 80) 라이브 무대를 본다. 징기스칸이 무대에 등장한다. 체육관 디스코텍에 운집한 청중들은 환하다. 미소 속에서 음악에 몸을 맡기고 팔랑거린다. 아이들이 쪼르륵 방으로 들어온다. 와, 와, 징기스칸이다. 후, 하, 후, 하, 워 호호호, 아 하하하. 나도 일어나 아이들과 왼쪽 상방으로 팔을, 이어서 반대 방향으로 팔을 곧게 편다. 우리는 춤추며 깔깔거리며 웃음 풍선을 타고 하늘로 날아간다.
그들은 초원의 바람을 타고 다투어 말을 달렸다, 천 명의 군사들
한 사람이 선두에서 말을 달리고, 모든 이들이 맹목적으로 그를 따랐다, 징키스칸
모래 먼지 피워 올리는 그들의 말발굽
그들은 전세계 모든 땅에 공포와 두려움을 전했다
천둥도 번개도 그들을 막지는 못했다
- 징키스칸, <징기스칸> 부분
징기스칸의 노래 주제 특징. 앞에서 보았듯이 이들은 역사적 사건, 영웅, 지명을 가사의 소재로 즐겨 사용했다. (헝가리 출신의 징기스칸 멤버 레슬리 만도키(Leslie Mandoki)와 같은 나라 밴드 뉴튼 패밀리(Newton Family)의 리드 보컬 에바 선(Eva Sun)이 듀엣으로 부른 <한국(Korea)>이란 노래도 있다.) 유라시아 대륙을 점령한 몽골의 징기스칸을 찬양하는 가사. 뒷부분에 하룻밤에 아이를 일곱 명 갖게 했다는 내용도 나와 다소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들의 노래는 신나는 리듬과 중독성 뚜렷한 후렴을 매끄럽게 버무린다. 심각하지 않다. 어둠이 없다. 서정적 가사가 격식을 높이고, 아름다운 선율에 훌륭한 연주가 뒷받침되어야 품위 있는 음악이 된다는 편견을 징기스칸의 음악은 거부한다. 세월이 그들의 음악에 디스코 시대의 아우라를 얹어 주었다. 일견 구닥다리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강력한 흡입력을 발산하는 이들의 시청각 복합 엔터테인먼트 작품은 인터넷 시대의 초고속 네트워크를 타고 전세계적으로 새롭게 소개되면서, 다양한 패러디 영상으로 전이되는 중이다. 당대의 유명세에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 중인 징기스칸의 작품이 대중음악의 고전이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대중성을 바탕으로 징기스칸의 팝 음악은 우리를 어우러짐으로 인도한다.
어떤 사람들은 징기스칸의 오리엔탈 키치(oriental kitsch) 냄새 짙은 음악을 안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 것은 기호 문제이다. 좋아하지 않는 취향을 다른 사람들을 향한 혐오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의 높낮이를 구별하고, 등급을 매기고, 대중음악을 질이 낮다고 공격하는 사람을 경험한 적이 있다. 대학원에 다닐 때, 소설을 전공하는 학자와 회식을 갖게 되었다.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떤 학생이 자신의 시디(CD)를 주인에게 틀어 달라고 건넸다. 뉴 트롤즈(New Trolls)의 콘체르토(<<Concerto Grosso per 1>>) 앨범이었다. 히트곡 <아다지오(Adagio)>와 <카덴자(Cadenza-andante con moto)>가 넓은 홀을 메웠다. 우리는 클래식과 락을 혼합한 아트 락의 찬란한 현악에 젖어 들었다. 그 분이 갑자기 소리쳤다. 누구야? 이런 거 틀어달라고 한 놈 누구야? 우리는 깜짝 놀라 바라봤다. 누가 이런 싸구려를…… 클래식을 오염시키는 거 난 못 견뎌, 당장 꺼, 당장! 이런 천박한 음악을 내가 들어야 해? 봉변이었다. 그 분이 뉴 트롤즈의 가사가 세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따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문학의 타락이라고 울부짖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코웃음으로 응대할 수 있지만, 그때는 한 마디도 못했다. 교수의 음악 ‘갑질’이었다. 졸지에 뉴 트롤즈는 한국 지하 술집에서 클래식 음악을 더럽힌 쓰레기 밴드가 되고 말았다. 그 분께 징기스칸을 들려 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체면 때문에 술상을 뒤엎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마 조용히 자리를 피하지 않았을까. 서양 고전음악만이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그 좁은 우물에 틀어박혀 권위의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음악, 그것도 그 시대의 대중음악이었다. 귀족 부인들도 ‘모차르트 오빠’ 보러 몰려다니며 공연장에서 괴성을 지르다 실신했을 것이다. 난 징기스칸의 <하치 할레프 오마르>나 들으면서 춤이나 추련다.
한 동안 ‘하치~’를 보면서 아이들과 체조 같은 춤으로 부족한 운동량을 채웠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돌고, 오른팔은 오른쪽으로 왼발은 왼쪽으로, (나와라, 가제트 팔!) 두 손을 사다리 올라가듯 번갈아 내밀고…… 유튜브의 여러 클립 중에서 우리는 리믹스 버전을 좋아했다. 다시 보면서, 다리를 떨면서 박자를 맞추고 있다. 멤버 중 세 명이 세상을 떠났고, 한 사람은 활동을 중지했고, 두 여성 싱어만 지금도 젊은 댄서들과 활동하고 있다. 시간이 이들을 망각 속으로 데려갔는데, 이 경쾌한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나마 무념을 드나들며 치유 받는다.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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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가 찾아왔다. 피카소, 당신의 그림 속에 당신은 살아 있어요. 피카소, 당신은 우리 시대의 거울. 당신의 영혼이 남겨놓은 빛깔이 영롱해요. 부박한 세상의 편견을 당신은 무시해도 좋아요. 피카소, 오로지 그림만 그리고 싶어 했던 당신은 우리의 사랑과 믿음 속에서 불멸해요. 파블로 피카소, 예술은 당신의 것이에요. 저 수많은 별 중에 당신이 있답니다. 세련된 유로 댄스 팝이다. 신디사이저가 쿵짝쿵짝 놀고, 네 명의 남자 보컬과 두 명의 여자 보컬이 노래를 나누어 부르다가 화음으로 결합한다.
이번엔 안데스로 이동한다. <마추 피추>에 오른다. 혼성 보컬이 안데스의 청량한 바람처럼 휘몰아친다. 다른 것은 모르겠고, 그냥, “마추 피추”를 따라 부른다. 활강하는 콘도르가 보이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아, 아~~ 마추 피추 마추 피추. 주문이 따로 없다. 노래가 끝나는데,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음악이 있다. 삶의 곡절을 껴안고 우리를 감정의 심연으로 데려가는 음악이 추억의 등불을 켜 들고 찾아온다. <멕시코(Mexico)>로 가보자. <피스톨레로>이다. 플라멩고 기타! 독일어 가사는 입에 붙지 않는데, ‘피스톨레로’ 후렴구를 흥얼거리면서, 판쵸를 입고 선인장 옆에서 춤을 춘다. 징기스칸과 세계 여행을 떠난다. 엠피3(mp3) 재생장치에 저장하고 공항으로 간다. <이스라엘(Israel)>로,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로, <중국(China Boy)>으로, <일본(Samurai)>으로, <사하라(Sahara)>로, <히말라야(Himalaja)>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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