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도시의 연대기,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순간들에 바치는 송가

[허진석의 책과 저자] 오르한 파묵, '내 마음의 낯섦(A Strangeness in M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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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가 치면서 하늘, 산, 바위, 나무, 사방이 먼 기억처럼 밝아졌다. 메블루트는 평생을 함께 보낼 아내의 얼굴을 처음으로 가까이 보았다."


오르한 파묵이 쓴 아홉 번째 장편소설 '내 마음의 낯섦.' 2017년 11월의 세 번째 주를 이 책을 읽는 데 바쳤다. 22쪽 윗줄에 나오는 이 문장이 좋았다. 어찌나 좋았는지 원어로는 어떻게 썼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터키어를 모른다.

네 번째 주 월요일이 밝았을 때, 나는 시내 책방으로 달려가 빈티지 출판사에서 낸 영어판(A Strangeness in My Mind)을 샀다. 그리고 몇 줄 읽기도 전에 깨달았다. 매우 뛰어난 번역가가 소설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파묵의 언어는 조금도 다치지 않고 지금 내 손에 들려 있음을.


"there was a flash of lightning, and for a moment, the sky, the mountains, the rocks, the trees - everything around him - lit up like a distant memory. For the first time, Mevlut got a proper look at the face of the woman he was to spend a lifetime with."(9쪽)

# 1969년, 중부 아나톨리아의 가난한 마을에서 태어난 열두 살 소년 메블루트가 아버지를 따라 이스탄불에 간다.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 맑은 눈, 보기 드물게 정직한 소년은 학교를 다니면서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요구르트를 판다.


그러던 중 메블루트는 사촌형의 결혼식장에 갔다가 '라이하'라는 시골 소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 연애편지를 쓴다. 자그마치 3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에 빠진 라이하와 메블루트는 치밀하게 계획을 짜 한밤중에 도망을 친다. 사촌 쉴레이만이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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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은 소설을 쓰는 기술자다. 어떻게 해야 독자를 붙들어 둘 수 있는지, 책장을 덮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지 잘 안다. 성공한 소설 '내 이름은 빨강'에서처럼 그는 독자를 놀라게 해서 뒤에 나오는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수법을 쓴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마지막 숨을 쉰 지도 오래되었고 심장은 벌써 멈춰 버렸다. 그러나 나를 죽인 그 비열한 살인자 말고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른다."('내 이름은 빨강' 13쪽)


이 문장을 읽고도 책장을 덮고 잠을 잘 수 있는 독자는 많지 않다. 하지만 파묵은 내 마음의 낯섦에서 조금 더 은근하면서도 함축적인 방법으로 독자의 직감을 건드린다. 섬광 속에 드러난 소녀의 얼굴은 메블루트를 단번에 사로잡은 그 눈빛의 주인이 아니다.


메블루트도, 독자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안다. 파묵은 때를 놓치지 않고 운명의 올가미를 던져 놓는다. "그는 평생 동안 그 순간을, 그 낯선 감정을 자주 떠올릴 것이었다.(He would remember the utter strangeness of that moment for the rest of his life)"


그런데… 메블루트는 내색하지 않는다. 담담히 운명을 받아들이며 라이하를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삶이 주는 놀라운 선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그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거리에서 보자(터키 전통음료)를 팔며 살아간다.


"얼마나 많이 사랑을 나누고, 얼마나 많이 가까워지고, 얼마나 많이 이야기하고 웃었는지 자신이 이 세상에서 라이하를 가장 많이 안다는 것에 놀랐고 (중략) 사실은 편지를 그녀 같은 사람에게, 어쩌면 그녀에게 썼다고까지 점점 믿기 시작했다." (269쪽)


비가 내리던 그날 밤 번갯불이 운명처럼 진실을 드러냈듯, 감춰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메블루트가 마지막 본 아내 라이하의 땀에 젖은 얼굴에는 '오래전 함께 도망치던 날 저녁에 보았던 죄책감과 당황한 표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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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빨강을 읽기 직전에, 나는 이스탄불을 여행했다. 그곳에서 여러 차례 강렬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아야소피아에 갔을 때는 잘 아는 곳에 오랜만에 간 기분이었다. 2층에 올라가 대리석 벽에서 뜯어낸 십자가의 흔적을 보았을 때, 난간에 기대 1층을 내려다볼 때.


기시감이란 전생(前生)이 현재를 향해 보내는 신호일까. 나는 1층을 내려다보는 대리석 난간에 누군가 못 같은 물건으로 파낸 글자들을 발견했다. 그리스 문자였다. 거기서 아마도 영원한 사랑의 다짐이었을, 징표(♡)를 보았다.


우리가 이스탄불을 떠올릴 때, 그곳은 진짜 이스탄불이 아니다. 유럽 또는 미국 기독교 문화의 자장(磁場)에 사로잡힌 우리의 의식 속에서 그 도시는 콘스탄티노플이며 비잔티움이다. 오스만에 함락된 1453년 5월 29일 이전의, 그리스어를 사용한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천천히 오스만의 숨결이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도시, 우리의 과거를 닮은 투르크의 도시와 대면한다. 또한 내 이름은 빨강에서 이스탄불은 문향 가득한 오스만의 예도(藝都)가 아니었던가. 파묵의 여러 책들이 그렇듯이, 내 마음의 낯섦은 위대한 도시의 연대기이며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어느 순간들에 바치는 송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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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도시인 이스탄불에 대한 파묵의 사랑은 그의 작품 곳곳에 포도송이처럼 맺혀 향기를 내뿜는다. 오로지 이스탄불만을 위해 쓴, '도시 그리고 추억(Memories and the City)'이라는 부제가 붙은 에세이집 '이스탄불'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퍼블리셔스 위클리는 이렇게 썼다.


"한 도시에 대한 숨 막히는 초상이자, 죽어 버린 문명을 위한 애가이자, 복잡하게 얽힌 관계에 대한 성찰. 위대한 도시의 영혼을 관통하는 문학적인 여행."


파묵은 정말 기억의 눈을 통해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도시를 향한 그의 헌사는, 뉴욕 타임스가 썼듯이 '이스탄불의 눈에 보이지 않는 슬픔과 그것이 상상력 풍부한 한 청년에게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거기서 서울을 찾아낼 수도 있다.


시골을 떠나 몰려든 가난한 사람들. 그들은 거대한 도시의 변두리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하루하루 버티듯 반항하듯 힘겹게 살아간다. 내 마음의 낯섦에 등장하는 변두리 마을과 골목들은 이 땅의 가난한 아버지가 수은주 곤두박질치는 저물녘 봉지쌀을 옆에 낀 채 새끼줄에 꿴 구공탄 한 장을 들고 제 집을 찾아 스며들던 그곳이다.


텔레비전이 있는 집에 모여 축구 경기를 보고 유명한 가수의 노래를 듣는 이스탄불 사람들의 모습은 1970년대 서울의 변두리를 그대로 옮긴 듯 낯익다. 우리는 대청에 놓인 텔레비전의 브라운관속에서 '쪽발이'를 혼내주는 김일의 박치기에 열광했고, '아씨'의 호된 시집살이를 연민하지 않았던가.


파묵의 이스탄불은 세계를 열광시켜 비로소 터키의 도시로 환원한 듯하다. '카운터 펀치'는 내 마음의 낯섦이 이스탄불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적 도시로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논평은 더욱 결정적이다.


"파묵의 이스탄불은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과 같다. 그는 도시의 외관과 느낌뿐만 아니라 문화, 신념과 전통, 민족의 가치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내가 '이스탄불'을 읽은 다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탄불에 갔을 때는 처음 그곳에 다녀온 지 10년이 지난 뒤였다. 처음 이스탄불에 갔을 때 느낀 기시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거대한 미로에 빠진 듯 방향 감각을 상실했던 것이다.


세 번째 그 도시에 다시 간다면, 그러니까 내 마음의 낯섦이 아직 나를 사로잡고 있는 동안 그곳에 간다면, 나는 다시 길을 찾아내고 언젠가 들렀을 것만 같은 카페에 들어가 차이를 마실 것이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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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말1 : 나는 시내 책방에 가서 컴퓨터를 이용해 내 마음의 낯섦이 있는 서가를 찾아냈다. 그러다가 민음사에서 나온 파묵의 번역 소설이 또 있기에 사가지고 왔다. '하얀 성'. 내 마음의 낯섦이나 내 이름은 빨강, 그리고 이스탄불처럼 민음사에서 나왔고 번역한 사람은 이난아 교수이다.


이 교수는 한국외대 터키어과를 졸업하고 터키 국립 이스탄불 대학에서 석사, 터키 국립 앙카라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의 예에서 보듯 뛰어난 번역가는 한 언어 영역의 깊이와 다양성을 보장하고 무엇보다도 독자에게 안전한 지적 희열을 제공한다.

# 군말2 : 내가 일요일에 인터넷을 검색할 때는 광화문에 내 마음의 낯섦이 다섯 권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책방에 갔을 때는 네 권만 남아 있었다. 일요일 오후 늦게 아니면 월요일 오전 일찍 책방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 사갔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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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 지음/이난아 옮김/민음사/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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