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000건 ‘불법 낙태’…낙태죄 폐지 청원으로 보는 ‘낙태의 역사’ (영상)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낙태죄 폐지’에 23만 명의 청원이 이어짐에 따라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등장해 해당 청원에 대해 향후 실태조사에 나설 것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연간 약 17만 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에 따른 기소는 연간 10여 건에 불과하다.
사실상 낙태죄가 사문화된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하루 평균 이뤄지는 낙태 수술 건수는 3000여 건으로 추정된다.
인본주의 전통이 강했던 고대 그리스 시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사회의 위협요소로 인구과잉을 지적했고
그 해소책으로서 낙태를 정당화했다.
플라톤은 낙태를 ‘국가경영이라는 큰 선(善)을 위한 합당한 희생’으로 간주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구과잉의 해결법’으로 낙태의 허용을 주장했다.
낙태를 현실적 문제에서 생명과 양심의 문제로 치것은 기독교의 전래가 결정적이었다.
4세기에 작성된 사도 규약은
“하나님에 의해 형체와 영혼을 받은 것이 죽임을 당한다면
그것은 불의(不義)한 죽음이며, 반드시 보복이 가해질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세례 전 생명을 말살하는 낙태행위는 태아에게 천국의 문을 닫는 벌 받을 행동임을 암시한 것.
로마엔 낙태법이 존재했지만, 교회의 세력이 확장되며
낙태는 곧 살인이라는 인식이 불문율로 자리 잡게 된다.
고의적 자가 낙태를 불법으로 처음 규정한 것은 기독교에 앞서
기원전 1200년 아시리아 제국의 법전이었다.
법전은 낙태한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신체관통형(고문 후 말뚝으로 신체를 관통하는 형벌)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는 국가가 가부장 권력을 대체함과 동시에 낙태를 국익을 해치는 행위로 규정했음을 시사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16세기 종교개혁과 신대륙의 청교도들은 낙태에 있어
더욱 엄격한 잣대와 기준을 세웠다.
18세기에 등장한 토마스 맬서스의 인구론은
가난한 사람들은 출산과 육아의 권리가 없다는 발상을 가능케 했고
이에 여성의 배를 때리는 물리적 낙태나 낙태효과가 있는 식물을 임산부가 복용하는 풍습을 야기했다.
1859년 미국의사협회는 당시 횡행하던 낙태 관행을 비판하며
“낙태는 논쟁이 아니라 사악한 인본주의적 유물론과의 전쟁”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남성들이 성욕을 자제해야 낙태를 줄일 수 있다고 진지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자본주의의 등장은 교회를 밀어내고 사회 문화를 변모시켜 나갔고,
산업화 시기, 피임을 법으로 금지한 유럽국가에서는 가난한 여성들이 낙태를 위해
강력한 독극물을 마시거나 날카로운 물질로 자궁을 찌르는 참혹한 낙태 사례가 줄을 잇기도 했다.
이에 독일혁명 후 들어선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에서는
“내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를 내세운 여성들의 낙태 합법화와
여성의 자기결정권 요구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여성 운동 역사상 최대 규모로
여기서 영감을 얻는 혁명 러시아는 1920년 낙태금지를 전면 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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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조국 민정수석이 직접 나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해 답변하던 중
인용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임신중절에 대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발언을 놓고
천주교주교회 측의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생명의 존엄성과 사회 경제적 불가피성,
그리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국가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를 놓고
낙태죄 폐지 논란을 통한 성(聖)과 속(俗)의 치열한 전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박기호 기자 rlgh958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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