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기정 할머니를 추모하며…제1309차 수요시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제1309차 정기 수요시위가 15일 서울 종로구 舊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렸다. 이날 수요시위에는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가 자리를 함께했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인 이기정(92) 할머니는 지난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남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는 33명이다. (사진=문호남 기자)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낮 기온 6℃에 달하는 초겨울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제1309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서울 종로구 舊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15일 열렸다.
이날 수요시위는 지난 11일 별세한 故 이기정 할머니(92)에 대한 추모로 시작됐다. 장엄한 추모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300명의 참가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이기정 할머니를 기억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일본은 할머니들이 한 분 한 분 선종할 때마다 쾌재를 부르겠지만 우리들은 똑똑히 기억할 것"이라며 "눈을 감기 전 일본정부의 진실한 사죄를 받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소원이라는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평화와 인권, 정의가 살아있는 역사를 희망차게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이어 "한국 사드배치를 위시한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주의와 이를 발판 삼아 군국주의를 강화하려는 일본의 야욕으로 한·일 양국의 민중은 큰 고통을 받고 있다"며 "지금의 전쟁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과거에 대한 책임 인정과 반성,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죄와 정신적·물질적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한국정부는 2015 한일합의를 무효화하고 피해자들의 뜻을 묵살하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 일본이 전달한 10억엔을 즉각 반환해야 한다"며 "이것이 일본군성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이기정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하면서 위안부 생존자는 33명이 됐다. 1925년 충남 당진 출생인 이 할머니는 19세였던 1943년 서울의 소개소에서 일본 군인의 옷을 세탁하는 일을 한다는 말에 속아 강제 동원됐다. 이 할머니는 싱가포르에서 1년, 버마(미얀마)에서 1년 6개월여간 군전용 위안소에 동원됐다.
광복 후 이 할머니는 서울에서 식모살이를 하며 돈을 모았다. 뒤늦게 고향으로 돌아간 이 할머니는 아버지에게만 자신의 위안부로서의 과거를 알렸다. 이후 결혼을 했지만 위안소에서의 피해 때문에 불임이 돼 자식을 낳을 수 없었다.
이 할머니는 국가가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해준다는 사실을 모르며 오랫동안 어려운 형편 속에 살았다. 중풍으로 오른손도 사용할 수 없었다. 2005년 이 할머니의 이복 남동생이 뒤늦게 사실을 안 후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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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요시위에 참석한 안성 대덕초등학교 6학년 주윤하(12)양은 "할머니들이 저같이 어린 나이에 낯선 나라로 끌려갔으니 얼마나 무서웠을지 책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한서연(12)양은 "저희가 수요시위에 참석함으로써 할머니들의 지난 아픔을 달래드리고자 한다"고 발언했다.
서울 상원초등학교 6학년에 재학 중인 정은찬(12)군은 "'바위처럼'이라는 노래같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지에 깊게 박힌 바위처럼 큰 사람이 돼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께 진정한 사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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