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념중앙교육원 기영윤 교수

농협이념중앙교육원 기영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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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때 황금빛 벼들이 가득 채웠던 논은 이제 텅 빈 쓸쓸함만 남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년에 비해 쌀 가격이 좋다고는 하지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땡볕에 쏟은 인건비나마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 농업인의 셈은 막막하기만 하다.

쌀 소비가 감소해 공급량이 넘쳐난다고 한다. 작년 한 해 우리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61.9kg으로 30년 전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고물량과 수입물량도 공급량에 보태진다. 그러니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민 또한 경제주체이므로 가격이 주는 신호에 반응하라고 주문한다.

일반적으로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되고 이때 효용이 최대가 된다. 즉 생산자도 소비자도 만족하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최적의 자원 분배가 이뤄진다. 근본적 시장주의자들이 정부의 농업 보조금 정책이 부당하다며 주장할 때 이를 근거로 삼는다. 쌀값이 하락해도 목표가격 대비 85%를 정부가 지원해주기 때문에 농민들이 쌀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술 더 떠서 포퓰리즘에 의한 국가예산의 낭비라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쌀 가격을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은 완전경쟁시장이라는 특정한 전제 하에서만 타당하다. 현실에서 완전경쟁시장을 찾기 힘들다는 것은 이미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또한 시장에는 가격을 매겨 거래를 하지는 않지만 생산자나 소비자의 경제활동이 직·간접적으로 제3자의 경제활동과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경제가 존재한다.

쌀의 생산 과정, 나아가 농업이 주는 외부경제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식량을 공급하는 기능 외에도 환경보전, 수자원?확보와?홍수방지,?지역사회?유지, 전통문화?계승?등?농업과 농촌이 유지되고 보존되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농가에 지급한 변동직불금이 1조 4977억 원이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농업이 생산한 공익적 가치는 적게 잡아도 10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받는 것의 겨우 1할을 치루면서 비싸다고 하니 농민은 억울하고 농촌은 급속하게 해체되고 있다.


호미가 버려지고 농지가 투기 상품이 되고 농촌 인구가 줄어들면, 농업이 안고 있었던 공익적 가치를 국민들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 가격은 물론 100조 원을 훨씬 상회할 것이다.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농정 예산의 70% 이상을 농업인에게 직접 지급하는 공익형?직접지불제?중심으로 편성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스위스는 농업의?공익적?기능이 주는 가치를 국가가?지원해야?한다고 헌법에 명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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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의의가 국민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에 있다면 그 시작은 쾌적한 환경에서 안전한 생활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농업과 농촌이 무너진 후 어디에서 그런 환경과 안전을 사올 수 있는지 궁금하다. 쌀값을 받아들고 내년 농사를 계속할지 주저하는 농업인이 더 이상 없어야겠다.


농업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은 농업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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