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의 책 한 끼]한국 보수 왜곡시킨 분단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남태현 지음 / 창비 / 1만8000원
스웨덴은 사회주의를 사회민주주의로 갈고닦았다. 사민당은 1917년 처음 정권을 잡은 뒤로 지금까지 꾸준히 정국을 주도한다. 1928년에 정권을 잃었으나 1932년 선거에서 다시 승리했고 이후 42년 동안 정부를 이끌었다. 2014년 선거에서는 113석을 얻어 녹색당과의 연정을 바탕으로 통치하고 있다. 우파 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노르딕 모델'로 불리는 특유의 복지제도는 견고했다. 스웨덴에서는 1879년에 처음으로 전국적인 파업이 벌어졌다. 1889년에 생긴 사민당의 뿌리는 노동조합이다.
사민당의 초기 지도자였던 칼 얄마르 브란팅은 폭력을 동원한 혁명에 회의적이었다. 대신 선거를 통해 소수의 부르주아를 물리치자고 했다. 그래서 1902년 보통선거와 평등선거를 요구하는 총파업을 결행했다. 1913년에는 67세 이상의 모든 시민에게 연금을 주는 법안이 통과됐다. 스웨덴 복지제도의 근간이다. 미국 솔즈베리대학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부러워하는 그것(복지제도)은 노동자의 투쟁으로 이어진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고 말한다.
베네수엘라도 사회주의를 실험했다. 우고 차베스는 1998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됐다. 차베스는 급진적인 사회주의 실험의 상징이다. 주요 생산시설을 국유화ㆍ공공화하는 데 10년 밖에 안 걸렸다. 건강을 사회적 권리로 규정하고 국가가 이를 돌볼 책임이 있다고 헌법에 명시하는가하면 공공의료사업의 민영화를 금지하는 조항을 만들었다.
쿠바식으로 의료제도를 바꾸는 '바리오 아뗀뜨로 미션'에 2007년까지 1억달러 넘게 쏟아부었고 전국에 보건소 약 4700개를 신설했다. 한 때 사회주의의 총아였던 베네수엘라는 차베스가 죽고, 국제유가가 떨어져 경제가 위축되는 한편 정치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위기에 빠졌다. 차베스를 지지한 사람들조차 반정부ㆍ반사회주의 시위에 가담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제헌의회를 열어 독재를 강화하는 데 골몰한다. 정권이 바뀌면 베네수엘라에서 사회주의가 사라지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스웨덴과 베네수엘라는 같은 사회주의로 실험을 했는데 결과는 판이하다. 저자가 진단하기로는, 스웨덴은 자본주의의 발달을 일찍 경험해서 계급 간 정치적 타협이 가능했던 반면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의 식민통치, 독립전쟁, 노예제, 인종분쟁 같은 대내외 악재에 시달린 나머지 갈등을 조정하고 봉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그 어떤 이데올로기도 순항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우리 정치환경은 베네수엘라처럼 참담하지 않지만 스웨덴에는 한참 못미친다. 저자는 우리의 왜곡된 보수주의를 중요한 이유로 꼽는다. 북한과 미국 때문에 보수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일그러졌고, 이 때문에 보수주의로도, 진보주의로도 갈등을 해소하고 타협을 도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을 기준으로 마지막 보수정부인 박근혜정부의 키워드는 ▲반북 ▲경제성장 ▲친미다. 우리 보수주의의 시각에서 반북과 경제발전이라는 가치는 공화국 탄생과 맞물린다. 보수주의자들은 1948년 정부 수립을 "통일을 유보하고 분단을 선택"한 결과로, "공산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한 정치의 산물로 본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태생적 반공국가"일 수밖에 없다. 북한과의 "사활이 걸린 체제경쟁"의 중심은 산업화였고, 박정희 독재정권은 산업화의 '공로'로 아직까지 연명한다.
미국은 반북과 경제성장이라는 가치를 긴밀하게 엮는 도구다. '박근혜 탄핵 반대', '박근혜 석방'을 외치는 친박ㆍ우파 단체 회원들이 시위에서 성조기를 흔드는 건 그들이 이런 구도를 수십년에 걸쳐 체화했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대기업을 압박해 친박ㆍ우파 단체에 돈을 밀어넣고 시위를 부추기는 식으로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오염시켰다.
"조직과 자금, 여기에 권력까지 더해지면 정치 이데올로기 선동의 교과서적 예(나치가 전형적)가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공산ㆍ사회주의 가치에 대한 과민반응,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나 보수주의를 '수구'로 여기는 시각은 이처럼 얼룩지고 척박한 정치지형의 결과물이다. 한때 정권에 떠밀려 정당을 해산시키는 데까지 이른 헌법재판소가 아직 살아있는 그 정권의 수장을 파면한 반전 드라마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저자는 비례대표제에 기반한 의원내각제로 선거제도와 통치구조를 바꾸는 것이 우리 정치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비례성을 높이면 양당 중심의 정당체제가 약해져 다양한 이데올로기를 건강하게 표출하거나 학습할 수 있고, 내각제를 도입하면 '제왕적 대통령'의 등장을 방지하는 동시에 민의에 따라 정권을 비교적 손쉽게 교체ㆍ견제할 수 있다는 논리다.
비례성이라는 가치와 내각제가 내포한 순기능에 동의하지만, 대통령제가 그 자체로 폐해이거나 우리에게 부적절한지에 관해선 숙고할 지점이 있다고 본다. 엄밀하게 따지면 우리는 대통령제의 전형을 경험한 적이 없다. 대통령제는 권력분립(power division)이 생명인데, 우리의 대통령제에서는 의회의 상당부분(여당)이 정부와 유착한다. 정당의 기율은 높고 개별 의원의 자율성은 낮은 정치문화에서 대통령이 여당을 장악하거나 공천권 등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중요한 이유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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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기율이 높고 의원의 자율성이 낮은 건 내각제에 더 어울리니 이 또한 내각제로 바꿀 이유가 된다고 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유럽의 몇몇 내각제 국가가, 내각제주의자들이 말하는 순기능(비례성과 유연성)이 너무 커져 정치가 불안정해지는 걸 경험하거나 예상해서 이를 적절히 통제하는 쪽으로 제도를 정비해왔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내각제 또는 내각제가 가미된 이원정부제 등을 대안으로 상정하되, 대통령제를 '정상화'하는 방안도 같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얘기를 포함해서, 세계 곳곳의 이데올로기(보수주의ㆍ사회주의ㆍ민족주의ㆍ시오니즘 등)가 어떻게 작동하고 유지되는지에 관한 다양한 사례와 설명이 책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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