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거대한 옥편(玉篇)이다.' 중국엘 가면, 그런 생각이 저를 놓아주질 않습니다. 눈길 가 닿는 장면마다 한자의 형상과 의미가 겹쳐 보입니다. 천자문 한 획 한 획이 실물로 다가오고, '붕정만리(鵬程萬里)' 같은 사자성어는 동영상으로 살아납니다. 마치 한자교실의 칠판이나 스크린을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에 '대(大)'자를 붙이고, 얼마나 길어야 '장강(長江)이나 장성(長城)'이라 할 수 있는지를 절로 깨닫게 됩니다. 천안문과 자금성을 보고 나면, '넓을 광(廣)'자의 뜻을 실감합니다. 집을 뜻하는 '엄(?)'자와 가로 '횡(橫)'이 어울린 글자지요. 상형 문자 하나가 봉황의 날개처럼 지붕을 펼치고 선 것이 보입니다.
관념 산수화 속으로 들어선 것처럼, 천지의 경계를 분간하기 어려워집니다. 폭포가 삼천 척(尺)을 날아 떨어진다는 '이태백'의 허풍도 곧이듣고 싶어집니다. 소극장 배우가 초대형무대에 섰을 때의 얼떨떨함이 그렇겠지요. 속절없이 사대주의자(事大主義者)가 되는 순간입니다.
속상한 기억은 또 있습니다. 일본 교토 '혼간지(本願寺)'나, 나라(奈良) '도다이지(東大寺)' 전각들 규모가 우리보다는 중국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깔보던 왜국의 집들이 우리 것보다 작지 않음을 확인했을 때, 제 충격은 컸습니다. 제 자신에게 물음 하나를 던지게 되더군요. "조선에는 큰 것이 없는가?"
답도 찾았습니다. "종묘(宗廟)를 보라." 북경에 갖다놓아도 도드라져 보일만한 크기와 넓이지요. 한 글자로 이르자면 '광(廣)'! 위엄과 권위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광(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넘어, 하늘나라 재산목록에도 등재되어 있을 것만 같은 건축입니다.
인간의 작품이지만, 천지신명도 아끼고 보호할 것입니다. '한 일(一)'자로 길게 그어진 정전(正殿) 용마루의 선이 저쪽 세상의 아스라한 경계처럼 보입니다. 정전 앞 넓은 마당 월대(月臺)는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침묵의 정원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실물 부록(附錄)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불현듯, '이우환(李禹煥)' 화백 생각이 납니다. 그이를 불러다가, 월대 한복판에 커다란 바위 하나 가져다 앉혀보지 않겠느냐고 권하고 싶어집니다. 베르사유 궁전 정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무대의 그 볼품없는 나무 한 그루를 세워놓아도 의미심장할 것 같습니다.
오백 년 묵은 햇살과 바람의 노래가 오래된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처럼 따라 울릴 것입니다. 바닥에 깔린 박석(薄石) 한 장 한 장에 숨겨져 있던 문장들과, 시간이 찍어둔 문양들이 우리들 눈에도 들어올지 모릅니다. 칼로 떼어낸 것 같은 저 돌들이 어쩌면 세월의 경판(經板)처럼 읽힐 것입니다.
박석들은 강화도 옆 '석모도'에서 왔다지요. 그러고 보니 서해의 물무늬가 들여다보이고, 파도소리도 들려옵니다. 상상도 물결처럼 꼬리를 뭅니다. 이 나라 해와 달이 여기서 자고 일어나는 광경이 그려집니다. 왕릉의 주인들이 조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침 풍경도 이어집니다.
종묘의 '혼(魂)'들과, 왕릉의 '백(魄)'들이 만나는 시간이면, 선릉이나 서오릉의 새들도 제 임금 따라왔다가 제 자리로 날아갈 것입니다. 경복궁 청설모, 창덕궁 다람쥐들도 모여들겠지요. 이 근동의 목숨 가진 것들 죄다 모여 귀신들 도움이 필요한 이승의 일들을 아뢰고, 저쪽 세상의 안부를 여쭐 것입니다.
왕릉에는 사람이 누웠지만, 여기엔 용들이 누워있을 것입니다. 이 동네 이름이 공연히 '와룡동(臥龍洞)'이겠습니까. 멀지 않아,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면 종묘의 위엄은 더해질 것입니다. 더 아름답고 그윽하겠지요. 저 무거운 지붕에 순백의 휘장이 드리워지고, 하늘나라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라도 놓일지 누가 압니까.
그런 날이면, 우리 같은 백성들도 선량한 임금님을 따라가서 처음 보는 세상을 잠깐씩 경험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무려나, 종묘가 우리를 매료시키는 힘은, 저 장중한 정전의 지붕과 깊은 처마에 있습니다. 7칸으로 시작해서 4칸씩 네 번이나 늘려낸 끝에 얻어낸 경이롭고 신비로운 선입니다.
지그시 눈을 감고 그 허공의 지평을 우러르다 보면 아무리 기울고 요동치던 가슴도, 금세 수평이 잡힙니다. 다음부터는 수요일에 와야겠습니다. 수십 명 관객들과 보조를 맞춰가면서 안내인을 따라 도는 것은 아무래도 답답한 대목이 더 많은 까닭입니다. 물론,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장점도 없지는 않지요.
이제는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사진작가 '임응식' 선생이나 '배병우' 씨의 카메라도 잡아내지 못한 종묘의 더 깊은 속을 보고 싶습니다. 단언컨대, 종묘는 조선건축의 자존심입니다. 그렇다고, 거리감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제사상 차려놓고 절하는 뜻과 다를 것 없이 착하고 반듯한 마음의 처소니까요.
내일이 마침 '가을제사(秋享)'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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