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방이, 방이 보이면 방이 없고 이미 방이 아니다 빈방이 속삭이는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침대는 아직 잠들어 있고 잠든 침대를 안고 빈방이 침대에 눕는다 잠든 침대는 잠을 자지 않고 빈방은 침대를 안고 빈방을 깨운다 그 빈방이 거울 앞에 눕고 그것은 방을 거부한다 빈방은 휴대폰의 화면에 갇힌 블랙홀이다 방을 집어삼킨 거울은 구토하지 않는다 빈방은 방이다 물구나무를 서서 방을 찾고, 금속활자들이 날아다니는 빈방, 입이 있으나 입이 없는 빈방이 빈방을 밀어내는 시간, 빈방처럼 누워 빈방이 너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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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빈방/홍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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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보이면 방이 없고 이미 방이 아니"라고? 생각해 보니 그렇다. 이 시에서 '방'은 "빈방"이다. 물론 '텅텅 빈방'이야 실제로 있지만, 말 뜻 그대로 온통 비어 있는 방이 정말 실재한다면 그 방을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무한이나 무(無)를 실감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러니 "빈방"이 보인다면 그것은 진짜 "빈방"이 아니다. 그리고 "이미" "빈방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빈방이 속삭이는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여하튼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은 좀 무섭다. 그런 "빈방"이 "빈방처럼 누워" 나를 "찾고 있다"니 말이다. 어젯밤에 나 혼자 자던 빈방에서 꿍얼거리던 소리는 혹시 "빈방"이 나를 찾던 소리였을까?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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