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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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 560번지에 석정(夕汀)문학관이 있다. 시인 신석정 선생의 인품과 시정신을 길이 전하고자 지은 곳이다. 2008년에 착공해 2011년 2월에 완공하였다. 건물은 단아하고 전시물들은 시인의 체취를 담아 정겹고도 간결하다. 시인이 남긴 시집과 수필집, 묵필 작품과 육필 원고, 산수화 작품 등을 간수하고 있다. 석정 선생이 생전에 머무르며 옥고를 써내려간 서실도 복원해 놓았다.


선생의 본명은 신석정(辛錫正)이다. 1907년 7월 7일에 부안에서 태어났다.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불교전문강원에서 수학했고, 1931년 '시문학'에 시 '선물'을 발표해 등단하였다. 선생은 '반속적(反俗的)이며 자연성을 고조한 동양적 낭만주의에 입각한 시를 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현대문학대사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나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와 같은 작품은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실린 정서가 웅숭깊다.

선생의 시편들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으리라. 이토록 지극한 아름다움은 또한 찬란한 오해를 불러 선생을 '목가시인'의 좁은 틀에 가두는 결과를 낳았다.'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에 있다(志在高山流水)'는 선생의 좌우명 또한 이미지를 가두었다. 그러나 엄혹한 일제강점기를 꼿꼿하게 걸어간 결기와 지성을 간과하고서는 선생의 생애와 문학을 온전히 이해하는 도리가 아니다.


최호진이 2012년 '용봉인문논총'에 발표한 논문 '신석정 시집 미수록 시의 시정신'은 그런 점에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논문에서 '목가적'이라는 평가가 시인의 현실의식을 가리는 역할을 해왔다고 지적한다. 그는 선생을 치열하게 역사와 민중을 노래한 현실 참여 시인으로 평가할 근거를 미수록 시들에서 찾아내 재평가를 요구한다. 굳이 미수록 시를 찾지 않아도 선생의 드레진 성품을 보여주는 시편은 적지 않다. 1939년에 '문장'에 발표한 '들길에 서서'를 보자. 자연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넘어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세계를 담아 내지 않았는가.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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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문학관에 있는 서실에서는 선생의 조상이 서안(書案)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그 자세는 선비의 모습 그대로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수수께끼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에 '내 마지막 원이니 의자에 한 번만 앉게 해 달라'고 하였다. 문학관에 이 글귀가 걸려 있다. 좌식 서실을 사용한 선생은 왜 위중한 몸으로 의자에 앉기를 원했을까. 이 또한 죽음에 맞선 대시인의 저항이던가.


의자에 앉음은 지성에 있어 직립의 또 다른 형태임에 틀림없다. 영혼의 바로 섬,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일. 이 직립 위에서 인간의 정신은 세상을 주유하고 우주를 유영하며 세상 밑바닥까지 유람한다. 석정 선생의 마지막 원이 단지 의자에 앉아 허리를 펴고자 함에 그쳤으랴. 새로운 우주를 향한 여행의 시작을 준비하고 또한 알리는 선언이었으리라고 감히 상상한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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