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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시대]'新아편전쟁' 선포한 트럼프…'오피오이드' 비상사태

최종수정 2017.10.31 14:02 기사입력 2017.10.3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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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거래 마약과 다른 오피오이드… 다국적 제약사 합법 생산·판매
일반 진통제보다 효과 세지만… 처방전만 있으면 약국서 구매
2015년 중독 사망자 3만3000명… 작년 6만2497명 역대 최고 증가
제약사 상대 책임소송 줄이어


[아시아경제 뉴욕 김근철 특파원]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대통령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 에 대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호한 어조로 오피오이드 사태에 대해 "국가의 수치이자 인간의 비극"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오피오이드는 아편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합성 진통제다. 최근 이로 인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미국사회에 전염병처럼 퍼지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미국에서 21세기판 '아편전쟁'이 시작된 셈이다.

흔히 미국에서 마약이라면 헤로인이나 코카인으로 통했다. 중무장한 마약 갱단들에 의해 은밀하게 암거래돼온 이른바 '길거리 마약'들이다. 오피오이드는 기존의 마약류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미국에 스며들고 있다. 오피오이드는 거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합법적으로 생산, 판매하고 있는 의약품이다. 상표명도 여러 가지다. 대표적으로 다옥시코돈, 하이드로코돈, 하이드로몰폰, 펜타닐, 트라마돌, 메타돈 등이 있다.

오피오이드는 일반 진통제보다 훨씬 강력한 진통효과를 나타낸다. 그래서 기존 진통제보다 강한 효과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처방된다. 의사의 처방전만 있으면 합법적으로 얼마든지 약국에서 '당당히'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난 5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음주운전' 사건도 사실 오피오이드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갓길에 시동이 걸린 차량을 세워두고 잠들어 있다 발견된 타이거 우즈는 경찰관들의 현장 심문에 혀가 꼬인 상태로 횡설수설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심지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체포 당시 혐의는 음주운전이었다.

그러나 소변 검사 결과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았다. 대신 하이드로코돈과 하이드로몰폰 등 오피오이드와 불면증 치료 약물 등이 검출됐다. 우즈는 이후 성명을 통해 "의사가 처방해준 여러 약을 함께 복용한 것이 이처럼 큰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며 사과했다. 오피오이드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미국 사회 깊숙히 만연돼 있는 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오피오이드로 병들어가는 미국 사회를 보여주는 실태는 충격적이고 심각하다. 연방질병통제센터(CDC) 산하 미 국립보건통계센터(NCHS)가 최근 발표한 약물남용 사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5년 헤로인과 같은 마약이나 오피오이드 등 마약성 진통제 중독으로 사망한 미국인은 5만2404명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144명이 마약이나 마약성 진통제 남용으로 사망하고 있는 셈이다. 이중에서도 오피오이드 계열에 의한 중독자 사망자는 63%에 달하는 3만3000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NCHS는 보고서는 오피오이드로 인한 중독 사망자가 1999년 10만명당 6.1명에서 2015년 16.3명으로 늘어났다고 밝혔다. 무려 3배나 급증한 것이다.

지난 해에는 오피오이드 피해가 더 늘면서 약물 남용 사망자가 6만2497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한 해에 19% 이상 증가한 것은 역대 최고 수치다.

미국의 10대들마저 오피오이드 중독에 빠져들다. 전미소아과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약물 남용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찾는 10대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보고서는 오피오이드 남용 후 응급실에 실려온 21세 이하 환자는 2013년 약 5만 명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는 2008년 3만2200명보다 55%나 급등했다.

오피오이드 중독 상황이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히는 오하이오주는 가족 시스템의 붕괴를 걱정해야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부모가 오피오드 중독으로 판명돼 다른 가정으로 위탁해야 하는 아동들은 급격히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을 맡아줄 위탁 가정은 태부족이다. 오하이오주에서만 1만5000명이 넘는 중독 가정 자녀들이 복지기관에 넘겨져 자신들을 돌봐줄 위탁 부모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최근 마이크 드와인 오하이오주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자청, 지역 주민들에게 이들 아동들에게 안정되고 따뜻한 가정의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오피오이드 오남용이 미국 사회를 위협하는 문제로 여겨지면서 이들 약품을 생산ㆍ판매하며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있는 거대 제약사들에 대한 비판여론도 비등해지고 있다.

대개 오피오이드 위기의 시발점을 1990년대 말로 잡는다. 오피오이드는 당초 암 환자 또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수술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던 진통제였다. 그러나 대형 제약회사 퍼듀파머 등의 강력한 로비로 1990년대 말 비교적 가벼운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에게도 의사들이 오피오이드를 처방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오피오이드는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먀약성 진통제란 입소문이 퍼졌고 수많은 미국인들을 중독상태로 몰아넣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일부 범죄조직들은 아예 의사를 고용하거나 병원과 짜고 제멋대로 오피오이드 처방전을 확보한 뒤 중독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2년 미 전역에서 발급된 오피오이드 처방전 발급 건수는 2억5900만건에 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중 상당수는 단순 치료용으로 쓰인 게 아니라 중독자들이 오남용했을 것이란 해석이 유력하다.

제약회사의 책임을 묻기 위한 소송은 줄줄이 이어질 전망이다. 워싱턴주는 최근 옥시콘틴 등 오피오이드 약품을 생산해온 퍼듀파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하이오주 역시 퍼듀파머, 존슨앤존슨, 엔도인터네셔널, 테바, 앨러간 등 5개 회사를 상대로한 소송에 나섰다. 이들 회사들이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의 위험성을 환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엄청난 이득을 취했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비상상태 선포식에서 제약회사를 직접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사태를 악화시키는) 나쁜 배우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연방정부도 오피오이드 관련된 소송을 검토하거나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들은 최근 오피오이드 약품에 대한 광고를 중단하거나 마약처럼 가루로 만들어 흡입하지 못하도록 제조방법을 바꾸는 등 고육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여론과 법의 철퇴를 피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연방 정부와 별도로 지역 정부 차원의 오피오이드 대책도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포가 나온 지난 26일 뉴욕시도 오피오이드로 인한 피해를 줄이고 시민들의 건강한 삶을 지키기 위한 '힐링 뉴욕(NYC)'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뉴욕시는 3800만 달러를 우선 긴급 투입, 오피오이드 오ㆍ남용 예방 교육과 중독환자 치료 지원, 오피오이드 불법거래 단속 등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밖에 적어도 17개 주에서 의사들의 오피오이드 처방을 강력히 규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비상사태 선포와 대처는 이미 들불처럼 번진 오피오이드 중독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란 비판도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오피오이드 위기를 갑자기 거론하면서 곧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전면전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6일 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보다 낮은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CNN 등 주요언론들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야 치료 방법 개선과 신속한 조치를 위한 연방정부의 긴급자금 지원, 각종 규제 및 제재 해제 등이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로는 연방정부의 추가 자금 지원 등에 제한이 많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와 후속 조치만으로는 오피오이드 중독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뉴욕 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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