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항쟁과 '님을 위한 행진곡'…한국전쟁 7시간과 세월호 7시간


- 되풀이되는 역사로 오늘날 대한민국 성찰
- 왜곡된 역사 완숙시키는 일은 시민의 몫

[임철영의 청경우독]권력을 앞세운 역사, 그걸 바꾸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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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생전에 나의 외할머니는 "나쁜 군인들 때문에 담요로 창문 가리고 벌벌 떨고 있었당께. 불도 못 키고 숨소리도 크게 못 냈어…" 라고 했다. 학교에서 배운 광주민주화운동 때 상황이 궁금해 건넨 질문에 저녁을 차려주며 했던 그의 답변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섞인 외마디 비명처럼 들렸다. 더 이상 묻지 못했다.


1980년 전남 광주에는 평범한 시민들이 살고 있었다. 꽃피는 5월. 광주 시내에 들이닥친 군인들이 곳곳을 들쑤시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시민들을 곤봉으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었다. 군인들은 폭압에 성난 시민들이 모인 광장에 대고 총을 쐈고, 군용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고립된 채 수없이 스러져간 광주 시민을 신군부는 폭도로 몰아 새로운 독재의 명분으로 삼았다. 제11대, 제12대 대통령 전두환은 그렇게 집권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엄혹한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온 시민들의 목소리로 역사가 다시 쓰이고 있다. 누군가는 그토록 숨기고 싶어 했던 날것의 이야기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왜 시민들은 주먹밥을 먹으며 광장에 모였고, 서슬 퍼런 총칼 앞에서 민주화를 외칠 수 있었는지.


진실을 가린 기억은 온전한 역사가 될 수 없고 온전한 역사는 상당 부분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완숙된다. 국론 분열을 조장한다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국가보훈처까지 앞세워 제창을 막은 '임을 위한 행진곡'도 그랬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이 곡은 이른바 운동권의 투쟁가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유창한 영어로 외신 기자들에게 상황을 전하고 마지막까지 계엄군에 맞서다 운명을 달리한 회사원 윤상원씨와 야학 활동을 하다 연탄가스 사고로 숨진 동료 박기순씨의 영혼 결혼식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이 노래의 가사는 재야 인사 백기완씨가 옥중에서 정신을 달구질하기 위해 지은 '묏비나리'라는 시를 소설가 황석영이 개작해 만들었고 작곡은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씨가 했다. 목숨을 걸고 비정상에 맞섰던 평범한 광주 시민의 슬픔과 염원이 담긴 곡이다. 시간이 지나 그 염원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고, 평범했던 시민은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다. 이것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이며, 37년 전 그곳에서 있었던 사건이 '광주 사태' 또는 '광주 폭동'이 아닌 이유다.


한 방송사의 프로듀서(PD)이며 평범한 사십 대 아버지인 저자 김형민이 이 같은 시대의 아픔과 부끄러움을 담아 써내려간 역사 이야기 97편을 모아 책을 내놨다.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라는 제목처럼 편지의 형식을 빌렸으나 무겁고 때로 엄숙하다.


책에는 5ㆍ18광주민주화운동(1980년) 외에 을미사변(1896년), 병자호란(1636년), 프랑스대혁명(1789년), 미국 뉴욕 트라이앵글 공장 화재 사건(1911년), 아편전쟁(1840년), 거문도 사건(1885년), 전함 포템킨 반란 사건(1905년), 6ㆍ25(1950년), 4ㆍ19혁명(1960년), 6월 항쟁(1987년), 위안부, 박에스더(김점동), 조지프 매카시, 무함마드 알리 등 익숙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이 등장한다.


평범한 시민의 시각으로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접근해 그 시각을 최근 벌어진 사건과 교차시키면서 풀어낸 절절한 고백이 이 책의 가장 큰 무기다. 앞서 나열한 오래된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 세월호 7시간 의혹, 태극기집회 논란, 촛불시위, 자원외교 논란, 백남기 농민 사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왕실장 김기춘,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이어지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기억해보면, 말도 안 되는 역사라 배웠지만 그 역사는 시간을 거슬러 반복되기 일쑤였다. 2014년 4월. 국가정보원이 증거와 증인을 조작해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으로 몰아버린 사건을 두고 검찰은 국가보안법상 날조죄가 적용되려면 범죄 성립 여부와 관련된 증거가 허위인 줄 알고 날조한다는 범의(犯意)가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정원에 죄가 없다는 이야기인데, 간첩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증거를 조작하면 날조지만 간첩이라고 믿고 그랬다면 날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국정원이 연루된 이 사건의 결말이 1955년과 1987년에 있었던 '망언'의 반복이라고 봤다. 1955년 9월. 최석채 대구매일신문 주필의 정부 고위 인사 비판 사설이 발단이 돼 벌어진 깡패들의 신문사 난입 사건 이후, 경북 경찰국 사찰과장 신상수는 진상조사단 앞에서 "백주의 테러는 테러가 아니다"는 망언을 남겼다. 최 주필은 깡패들보다 먼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그로부터 32년이 지난 1987년 1월.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두고 경찰 최고 책임자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책상을 '탁' 치며 추궁하자 갑자기 '억' 하고 쓰러졌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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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7시간'도 6ㆍ25 7시간을 닮았다. 1950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3시 북한군이 국군의 후방을 노리고 강릉 인근의 정동진으로 상륙하던 일촉즉발의 상황에 육군참모총장 채병덕은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를 마치고 인사불성 상태에서 잠에 들어 있었고, 작전국장 장창국 대령은 전화가 없어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영국에서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일요일을 즐기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컨트롤타워인 대통령 이승만은 경회루에서 낚시 중이었다. 대통령에게 보고가 된 시간은 오전 10시30분이었다. 결국 대통령 이승만과 박근혜는 56년의 간극을 두고 평범한 시민들이 나선 4ㆍ19혁명과 촛불혁명으로 물러났다.


권력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쉽게 쓰인다. 쉽게 쓰인 왜곡된 역사를 완숙시키는 일은 특별하지 않고 빛나지 않아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던 평범한 시민들의 몫이었다. 저자가 영화 '변호인'을 보며 분노하던 딸에게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처럼. "그때는 다 그랬어. 그런데 지금도 그래. 아빠를 비롯해 아빠 친구들이 더 똑똑해져야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희가 듣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망언'을 늘어놓아도 괜찮은 헝겊 막대 같은 사람들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임철영의 청경우독]권력을 앞세운 역사, 그걸 바꾸는 시민 원본보기 아이콘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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