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오는 평창올림픽 성화②]"국내 봉송 그랜드슬램, 생각만 해도 감격"
또 한 명의 주자 박영봉 가톨릭관동대 생활관장
1988년 서울올림픽·1999년 강원동계아시안게임·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등 모두 참가
"불꽃이 용광로처럼 갈등 녹여 국민 화합 계기되기를…"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누구보다 열망한 국민입니다."
박영봉 가톨릭관동대학교 생활관장(60)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는 지난 16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며 "세 번째로 평창올림픽 유치에 도전했을 때는 매일 같이 새벽 기도를 하면서 결과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평창 성화를 봉송할 국내 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리스에서 채화한 성화가 다음 달 1일 국내에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번 대회에서 임무를 완수하면 우리나라에서 열린 주요 스포츠대회에서 모두 성화봉송 주자로 참여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박 관장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작으로 동계 아시안게임(1999년 강원)과 하계 아시안게임(2014년 인천) 때 성화봉송을 했다. 강릉 토박이로 지역에서 하는 전국체육대회와 도민체육대회에서도 불꽃을 운반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통해 그가 30년 동안 계획한 꿈을 마침내 이룬다.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을 마치면 한국기록원에 절차를 밟아 신기록 인증도 받을 계획이다. 박 관장은 "조회를 해 보니 세계적으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가치 있는 기록이라고 하더라. 하계와 동계 국제대회를 모두 유치하기 위해서는 국력은 물론 기후도 뒷받침돼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자긍심이 크다"고 했다.
그는 성화봉송과 함께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올림픽과 스포츠가 주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아 참가 신청을 했다. 평창 조직위원회와 성화봉송 후원사 등의 심사를 통해 지난달 11일 주자로 뽑혔다. 처음 주자로 참가한 88 서울올림픽 때도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이뤘다고 했다. "올림픽은 선진국만 할 수 있는 행사라고 여겼는데 우리나라가 그 대열에 합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찬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아시안게임과 동계올림픽도 유치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때부터 모든 성화봉송에 참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성화봉송 주자로 뽑혔으나 태풍 '루사' 때문에 강릉에 1000㎜가 넘는 비가 쏟아져 행사가 취소됐다. 그가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다시 목표를 이어가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이를 계기로 인생을 사는 마음가짐도 바뀌었다고 한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긴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인내한다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거듭 강조하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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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관장은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보며 애국심이 샘솟아 공수특전단에 자원입대했다고 한다. 1979년 낙하 훈련을 하다가 허리를 다치면서 국가유공자가 됐다. 재활과 건강관리를 위해 1989년 시작한 새벽 신문배달을 30년 가까이 계속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돈과 자비를 보태 불우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촛불장학회' 사업도 내년이면 만 30주년이 된다. 그동안 장학금으로 기부한 금액은 약 2억원. 크고 작은 지역 일을 돌본 공로를 더해 2015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고향 강릉은 물론 평창을 아울러 강원도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문향(文鄕)과 예술의 고장이자 관광과 안보의 중심이다. 스포츠와도 인연이 각별하다. 평창 성화봉송을 계기로 우리 지역의 장점을 보여주기 위해 시도민들이 합심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불안한 국제 정세에 세대와 지역 갈등이 겹쳐 동계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상황. 박 관장은 이럴 때일수록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가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올림픽이 지향하는 가치는 화합과 평화다. 국민이 화합하고 북한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면 올림픽을 개최하는 무형의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했다. 성화봉송을 하면서도 이러한 바람을 담아 달릴 계획이다. 그는 "처음 성화봉송을 할 때 수많은 시민이 열광하고 단합하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다. 평창의 불꽃이 용광로처럼 갈등을 모두 녹이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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