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왕정의 종말]①푸미폰 국왕과 함께 불길 속으로…막 내리는 2200년 전제왕정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지난해 89세의 나이로 서거한 태국의 라마9세, 즉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의 장례식이 25일(현지시간) 오후부터 5일간 일정으로 수도 방콕에서 열린다. 이미 전 세계 왕들과 왕족들, 유명인사들이 조문을 위해 방문했고 26일 불교식 화장으로 예정된 장례식에는 17만명의 조문객이 몰려들 예정이다. 그의 장례식은 단순히 일국 군왕의 죽음을 넘어 중국의 진시황제 이후 2200년간 이어진 아시아식 전제왕정의 완전한 종말을 보여주고 있다.
태국은 1930년대 이후 표면적으로는 입헌군주국 체제를 정립했지만 푸미폰 국왕은 단순한 입헌군주로 취급된 적이 없다. 그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절대왕정을 이끌었던 전제군주로, 전 근대시대 전통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대우받았다. 현실정치에서 군부가 계속 쿠데타를 벌이고 민간정부가 다시 들어서도 장군이던 총리던 국왕 앞에서는 모두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알현해야했다. 이것은 푸미폰 국왕 개인의 권위 뿐만 아니라 18세기 이후 들어선 태국 짜끄리 왕조의 권위가 만든 왕좌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태국은 아시아 국가 중 제국주의 국가가 된 일본을 제외하면 서구 식민통치를 겪지 않고 전통왕조도 단절되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 태국의 짜끄리 왕조는 1782년, 라마1세가 등극한 이후 200여년간 이어진 서구의 동남아시아 침략과 대혼란 속에서도 국권을 지켜낸 왕조로서 국민들의 높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 쭐랄롱곤 대왕으로 불리며 푸미폰 국왕의 할아버지이기도 한 라마5세 이후 걸출한 국왕들이 등장하면서 왕정을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이어졌다.
19세기 말 당시 미얀마를 무력 점령한 영국과 베트남을 무력점령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식민지를 세운 프랑스의 침략에 맞서 라마5세는 이 두 세력을 절묘하게 이용한 '대나무 외교'라 불리는 줄타기 외교를 벌였다. 그 결과로 프랑스와 영국은 태국을 중립지역으로 놔두기로 합의했으며, 그 덕에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국권피탈을 당하지 않은 나라로 남았다. 그래서 보통 우리나라의 고종을 비롯해 국제외교에 실패했던 아시아 여러 왕조의 마지막 임금들과 비교되곤 한다.
이후 짜끄리 왕조는 1932년 발생한 군사쿠데타로 전제군주제가 폐지되고 당시 국왕인 라마7세가 외국으로 망명 후 퇴임하면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후임자인 라마8세도 스위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나흘만에 침실에서 총상으로 사망하면서 왕조를 둘러싼 암투가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형인 라마8세의 뒤를 이어 라마9세로서 제위에 오른 푸미폰 국왕은 뛰어난 정치적 감각으로 군부와 민간정부를 상대하며 왕실의 권위를 다시 세워놨다.
재위 내내 10여차례의 쿠데타를 겪으며 태국은 정정불안 위기에 휩싸여왔지만 대부분 사태의 수습은 푸미폰 국왕의 정권 승인여부에 따라 결정됐다. 태국은 입헌군주국이지만 헌법 6조에 따라 "어려운 국면에 처했을 때 국왕은 국가의 상징으로서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조항이 있으며 라마5세 이후 이어진 국왕의 막강한 권위는 정통성이 부족한 군부 실력자들에게는 민심을 돌릴 수 있는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였다. 이에따라 푸미폰 국왕의 승인이 없는 쿠데타는 모두 실패했다.
1992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했던 수찐다 끄라쁘라윤(Suchinda Kraprayoon) 육군사령관이 푸미폰 국왕을 무릎꿇고 알현한 장면. 국왕의 인준을 받지 못한 수찐다의 쿠데타는 실패했다.(사진= 프랑스국립시청각자료원(INA) 영상 캡쳐)
원본보기 아이콘푸미폰 국왕이 군부 쿠데타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1973년으로 당시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타넘 낏띠카쩐(Thanom Kittikachorn) 총리가 민주화시위를 강경진압하자 직접 옥음으로 군부의 폭력중단과 타넘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면서부터다. 이 일로 타넘 총리는 외국으로 쫓겨났고 군부 쿠데타도 종식됐다. 타넘 총리는 이후 태국으로 돌아와 출가해 승려로 생을 마감했다.
푸미폰 국왕의 무소불위의 권위를 보여준 사건은 1992년 수찐다 끄라쁘라윤(Suchinda Kraprayoon) 태국 육군사령관이 일으킨 쿠데타를 푸미폰 국왕의 말 한마디로 진압했을 때였다. 당시 푸미폰 국왕은 수찐따 사령관을 왕궁으로 소환했으며 무릎으로 기어와 알현한 그에게 "부적절하다"고 한마디 일갈을 했다. 이 일로 쿠데타는 실패하고 수찐따는 외국으로 망명했다. 최근에는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와 그의 동생인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전 총리의 부패 문제로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를 승인, 총리들을 사퇴시켰다. 군부도 민간정부도 국왕의 말 한마디에 단번에 무너지고 세워지기를 반복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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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푸미폰 국왕이란 인물이 가지고 있던 개인적인 카리스마와 여러 업적들 뿐만 아니라 그가 상징하는 전제왕조 마지막 군주로서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더해진 덕분이었다.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진시황제부터 시작된 아시아식 전제군주제의 마지막 군주로서 국민들의 마음 속에 상당히 큰 권위가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으로 이러한 전제군주는 다시는 만나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로 왕으로 등극한 마하 와치랄롱꼰 현 국왕은 왕세자 시절부터 각종 스캔들에 휩싸이며 권위가 거의 무너진 상황이며 대내외적으로도 지나친 왕실의 개입으로 태국 민주주의가 계속 후퇴해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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