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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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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배우A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 사진=정준영 기자

'남배우A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기자회견 / 사진=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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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같음을 인정받고 다름이 이해되다."

2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위치한 변호사회관 11층에서는 한 성폭력 사건 피해자 B씨의 편지가 낭독됐다. B씨는 편지에서 "저는 (1심 재판부로부터)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과 '같음'은 인정받지 못했고, 영화계의 특수성 등 '다름' 또한 이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B씨의 직업은 여배우였다.
B씨는 지난 2015년 4월 한 저예산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어난 일로 상대 남배우 A를 강제추행치상이라며 고소했다. 촬영 도중 상호 합의 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성추행 했다는 것이다. 이에 A는 강제추행사실이 없음에도 B씨가 자신을 고소했다고 하여 B씨를 맞고소했다.

2015년 말에 시작돼 1년을 꼬박 넘겨 나온 1심 결과는 무죄였다. 재판부는 "A가 B의 신체 일부를 만진 사실이 인정된다"면서도 "업무로 인한 행위로서 형법 제20조에 의해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시했다.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며 '정당행위'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상대방의 신체를 만졌지만 영화배우로서 감독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거나 정당한 연기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라면 성추행으로서의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것이다. '영화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판시였다.
B씨는 1심 재판에 불복했고 항소심은 지난 13일 A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강제추행치상, 무고죄를 이유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감독의 일방적인 연기지시나 이에 따른 A의 연기내용에 관해 피해자와 사전에 공유하거나 피해자로부터 승낙을 받지 않은 이상 그것을 단지 정당한 연기였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설시했다.

이어 "계획적, 의도적 행위가 아니었다거나 감독의 연기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서 추행의 고의가 부정된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A가 B씨를 고소한 부분도 무고죄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에 대해 조인섭 법무법인 신세계로 변호사는 "영화촬영장에서의 연기 등으로 인한 추행 판단 기준을 마련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감독의 지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연기내용에 대해 피해자와 공유되지 않는 이상 면죄부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여성영화인모임 등 12개 단체로 이뤄진 '남배우A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본 판결은) 합의되지 않은 연기(성폭력)는 연기를 빌미로 한 범죄행위임을 명확히 밝힌 것"이라며 환영했다.

공대위는 "한국영화는 사실적인 연기를 유도한다는 미명 하에 (여자배우를) 실제 위험으로 내모는 일을 자행해 왔다"며 "영화를 위해선 뭐든 용인될 수 있다는 생각과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은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B씨는 편지에서 "(제가) '어떤 여자'인지, 피해자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피고인 측 공격에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도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집중해 대응했다"면서 "(재판부에 대해서도) 영화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 성폭력 피해자로서 동일하게 겪는 현상을 알렸다"고 했다.

이어 B씨는 "성폭력 피해자였음이 연기 활동에 장애가 될지도 모르지만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킴으로써 싸우고 싶다"며 "여전히 분하고 고통스럽지만 차분하게 제가 할 수 있는 말부터 하겠다"고 마지막 말을 이어갔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정준영 기자 labr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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