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몸사리는 공공기관 직원들
정부 눈치보기 급급…몸 낮추고 권한 밖 일 하지 않으려
[아시아경제 이광호 기자, 김민영 기자] 정부가 '적폐 청산'의 칼날을 매섭게 휘두르면서 공기업 ㆍ공공기관 임직원은 물론 공무원까지도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에서 '적폐'를 이야기할때마다 해당 부처와 기관 직원들은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정부의 사정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을까 몸을 잔뜩 낮추고 권한 밖의 일은 하지 않으려는 '영혼 이탈' 직원들도 늘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 A씨는 최근 '플라워 트럭(Flower Truck)'이 과천 경마공원 앞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마사회에 요청했다. 플라워 트럭은 꽃 생활화와 청년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이다. 판로를 확보해주자는 좋은 취지였다. 하지만 처음에 긍정적 결정을 내렸던 마사회가 사업 하루 전날 협조가 어렵다는 뜻을 전해왔다. 허탈해 하는 A씨에게 마사회 관계자는 "괜히 공짜로 장소를 제공했다가 '대가성' 등을 의심받아 감사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마사회 임직원들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고초를 겪으면서 '눈 밖에 나는 일은 되도록 하지말자'는 분위기라고 한다.
또 다른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B씨는 최근 내부감사를 받으면서 '벽 보고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윗선에서 내린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을 뿐인데 당시 상황을 아무리 설명해도 감사직원은 현재의 잣대로 2년 전 B씨의 행동을 질책했다. B씨는 "일개 월급쟁이가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떻게 아느냐"며 "기관장이 시켜서 한 것 뿐인데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당시 정부 정책에 맞춘것 뿐인데 이제와서 적폐로 몰려 억울해하는 기관도 있다. C기관은 이전 정권에서 아웃소싱(outsourcingㆍ위탁)을 강조하며 특정사업을 제외하고 모두 외주화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결국 인사관련 직원들은 외주화를 착착 진행했는데 정권교체 후 적폐직원으로 낙인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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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 산하 기관 직원들도 눈치보기에 피로도가 쌓인 상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관을 비롯한 기관장들이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감에 '졸속' 행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결국 그 부메랑은 직원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고용부 산하 기관 한 직원은 "회사의 수장이 (양대 노총의) 10대 적폐 기관장으로 낙인 찍히면서 수장이 사퇴하고 직원들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졌다"며 "직원들이 서로간에 눈치를 보며 일은 뒷전"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산하 기관 직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춰 노동 양대치침과 관련한 연구를 했었다"며 "위에서 시키는대로 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결국 돌아오는 건 인사 불이익"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당시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공정인사'와 '취업규칙 지침' 등 양대 지침을 발표했지만 문재인 정부로 바뀌면서 1년8개월 만에 사라지게 됐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공무원은) 정부의 정책 방향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걸 알지만 자괴감과 무력감이 교차한다"며 "요즘에는 무언가를 앞서서 해야겠다는 신념이 없다, 정년까지 조용히 버티는게 답인거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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