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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잠시, 한 세계가 구약처럼 밀려날 때
 그때 오직 우리가 오직 바랐던 건,
 무너져 내린 어느 제국의 한 귀퉁이 구원 없이
 여전히 버림받거나 쫓겨난 자로 살아가기,

[오후 한 詩] 희망의 시절/임동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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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쓸개즙 같은 근원의 물기를
 연신 핥는 혀들의 낯선 느낌을 지속하기,
 하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가 내내 사랑하고 의지한 건
 일체의 희망 없이 희망의 전부를 꿈꾸기,
 뿌리치기 힘든 국가의 명령보다 힘세고
 더 완벽한 한 세기의 몰락의 아름다움,
 또는 그 황홀한 불가능의 덧없음과 의기양양함.
 아니면 미처 물러가지 않은 밤의 저주와
 자꾸 질 나쁜 예감으로 뒤숭숭하던 그 시절,
 우리가 그토록 간절히 찾아 헤매던 건
 다가갈수록 멀어지는 지평 같은 절대 고독,
 혹은 실상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어
 다시 펼쳐든 신약 같은 순간적인 사랑의 윤리.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내내 사랑하고 의지한 건" "일체의 희망 없이 희망의 전부를 꿈꾸"는 것이었던, 참담하나 아름다웠던 시절 말이다. 이 시를 쓴 시인에게 "그 시절"은 아마도 1980년대일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희망의 전부"를 꿈꾸기 위해 모든 희망을 스스로 버려야 했던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버림받거나 쫓겨난 자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사랑의 윤리"를 꿋꿋이 지켜 가고 있는 숭고한 사람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있었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이런 생각도 든다. 과연 지금도 "희망의 전부", 달리 적자면 '전부로서의 희망'이 남아 있는가, 아니 그것은 가능한가. 혹은 이제 우리는 어떤 희망들을 "희망의 전부"로서 꿈꾸어야 하는가.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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