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한번 해 볼랍니다. 받아나 줄랑가 모르겄지만서도 진즉 사별허고 혼자인 거 안 이상 머뭇거려 봐야 더 뭣허겄소. 엘리베이터에 복도에 계단까정 말끔허게도 청소 다 끝내 놓고 하필이면 장애인용 화장실 난간에 기대 앉아 두런두런 뭔 재미로 그리 소곤대는지. 소리 죽여 감서 웃을 때 입가에 보조갠가 그거요 그게 거시기 맘을 들었다가 놨다가 막, 나 참. 어디 궁둥이 붙이고 차 한잔 마실 자리가 없어 하나는 변기에 또 하나는 난간 손잡이에 앉아 사이좋게 나눠 마시는 봉지 커피 한잔, 어찌나 달착지근하게도 넘어가는지. 피차 계약서 한 장 달랑 쓰고 청소 용역으루다가 일하고 있지만서도 병원 대리석 바닥 같은 가심서 뭣이 막 솟아나는 것 같단 말이오. 일단 용서를 먼저 구하는 것이 사람 된 도리인 줄 아오만 요새 몰래몰래 당신 훔쳐보는 재미가 이거 뭐 일이 손에 착착 붙는다고 해야 하나, 애가 타 잇속이 싹 다 금 갔다고 해야 하나. 처음엔 다 늙어 무신 놈의 주책이냐고 저어도 보고 한잔 묵고 다스려도 봤는디 사람 일이란 게 거 모르더만요. 지운다고 지워도 안 지워지는 뭐 그런 거 있잖어요. 우덜 같은 계약직. 요샌 뭐 계약직 말고는 당최 일자리가 없는 모양이등만. 어쨌든 간에 명년을 기약할 수 없기에 덥석 계단 난간 닦는 손이라도 잡고 싶지마는, 보는 눈도 있고 괜시리 나 땜에 흠 잡힐까 봐 성급한 맘 이렇게 글자 몇 줄로 대신 허요. 긍게 거시기 쉬는 시간에, 그게 뭐 대중없지만서도 장애인용 화장실 난간에 앉은 당신 훔쳐보는 거 징그럽게 답답허고 가심 떨리니께 성에 찰랑가 모르겄지마는 우리 어떻게 한번 만나나 봅시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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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영우 화백

그림=이영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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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랑엔 국경도 없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었다. 이 문장은 아무래도 저 냉전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낭만적 판타지와 그 안에 도사린 최종 심급을 요약하고 있다. '국경'은 이념 혹은 체제의 표상이었고, 그것은 결코 넘어서는 안 될 마지막 경계선이었다. 이념과 그에 따른 체제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화는 국경의 개념 자체를 무화시키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독려하기까지 한다. 결혼 이민과 노동 이민은 이미 흔한 일이고, 이제 '국경'은 사랑의 절대적 장애물이 아니다. 이 시는 물론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사랑은 꽃핀다는 희망적 전언을 담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명년을 기약할 수 없"다는 계약직의 절박함은 오래전 '국경' 앞에 선 자의 그것만큼이나 단단하고 까마득하다. 제발 이들이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일이 공상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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