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의 책 한 끼]자유민주주의 위기…21세기 폭력에 흔들리다
[서평]왜 나쁜 역사는 반복되는가 / 제니퍼 웰시 지음 / 이재황 옮김 / 산처럼 / 1만5000원
냉전 이후 강권정치·충돌 소멸 예언한
후쿠야마의 '안전한 종착역' 맞지 않아
정치적 이권 계산에 증폭하는 난민
'푸틴 러시아'의 新냉전 그림자도
"IS는 중세의 괴물"…참상의 회귀
빈부 격차 심화, 불평등시대 돌아가
"서방 자유민주주의의 보편화가 인간의 최종적인 정부형태(역사의 종말)"라며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단언ㆍ선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조금은 당황한 듯하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인 후쿠야마는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함으로써 냉전 이전까지 횡행한 강권 정치나 대규모 충돌은 사라지고 평화로운 세계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지난 2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역사의 종말을 집필하던) 25년 전만 해도 나는 민주주의가 어떻게 후퇴할 수 있는지 생각하지도 못했고 이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지금은 분명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널드 트럼프가 집권하고 난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유럽을 뒤덮으며 극우ㆍ포퓰리즘이 솟구치는 현실의 신문(訊問)에 자백한 듯하다.
1991년 제임스 베이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은 반미반소 독자 노선을 걸어온 폐쇄사회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를 방문했다. 인구가 20만이었던 이 도시에 30만명이 몰려들어 "미국 만세", "베이커 만만세"를 외쳤다.(한겨레신문 1992년 3월25일자) 그 해 알바니아 총선에서 집권 사회당은 참패했고,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는 일단락됐다.
베이커는 이런 말을 남겼다. "냉전은, 시작된 지 반세기 만에 숨을 거두었다." 후쿠야마는 '서방 대표' 미국이 부르짖은 자유민주주의의 나팔수에 불과했던 것인가.
유엔 사무총장 특별보좌관 출신이자 유럽대학원 국제관계학과 교수인 제니퍼 웰시는 '왜 나쁜 역사는 반복되는가'에서 후쿠야마의 사반세기 전 주장이 "역사의 진보에 관한 대담한 낙관론"이었는데, 그가 의지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생명의 징후는 "불안하다"고 판정한다.
냉전이 끝난 뒤로 지금까지 우리가 목격한 서방식 자유민주주의의 부조리로 미뤄볼 때, 역사는 후쿠야마의 예언처럼 안전하게 자유민주주의라는 종착역에 다다르지 않고 "비틀려서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많은 위기를 극복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그런 능력은 서방 국가들의 통치자와 피통치자 모두를 자기만족에 빠지게 만들었다. 과거에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던 일이 약점을 만들어, 지금 우리를 10년 또는 그 이상의 커다란 정치적ㆍ경제적 혼란으로 밀어 넣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역사는 돌아왔다. 맹렬한 기세로."(47쪽)
자유민주주의에 반작용해 역사가 '비틀려서 되풀이'된 사례라며 웰시가 첫째로 들이민 건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ISIS)다. 웰시는 'IS편'의 제목을 'IS는 중세의 괴물인가-야만의 회귀'로 잡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의 말을 빌렸다.
캐머런은 2015년 12월 의회 토론에서 "(IS 추종자들은) 야지디 신자들을 노예로 삼고, 동성애자들을 건물 밖으로 집어던지며, 인도주의 구호원들을 참수하고, 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을 강제로 결혼"시켰다면서 "중세의 괴물"이라고 묘사했다. '노예', '동성애 탄압', '참수', '강제결혼'같은 행위를 합치면 '중세'다.
웰시는 IS의 호소력이 중동 문제를 향한 외국(대체로 서방)의 개입에 따른 분노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강해졌다고 분석한다. '대체로 서방'에 드는 국가 대부분은 석유를 둘러싼 이권을 내포한 자유민주주의라는 구호를 앞세우거나 이를 추종해 중동을 공략하려 했다.
웰시는 시리아의 소도시 마다야 주민들의 움푹 파인 얼굴을 담은 사진을 상기한다. 지난해 2월에 보도된 사진이다. 시리아 정부와 헤즈볼라는 마다야를 양 쪽에서 차단했다. 마다야 사람들은 몇 주씩이나 음식과 물, 전기도 없이 살았고 '필사적인 부모들'은 길 잃은 고양이와 개를 잡아 아이들에게 먹였다고 한다.
웰시는 "그 때도 정말 그랬다"고 말한다. '그 때'는 1940년대 초반이다. 나치 독일과 동맹 핀란드의 침공으로 고립된 레닌그라드. 혹한기에는 한 달에 10만명씩 죽었다. 경찰은 "거리에 수척한 시신들이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개와 고양이가 사라졌다. 주민들은 칼로리가 있는 '목공 접착제 젤리'까지 먹었다. 배역이 바뀌었을 뿐, 참상은 재현됐다.
웰시는 "정말로 변화하고 있는 갈등의 본질을 우리 자유민주주의가 이겨내려면 우리는 단순한 의문을 가지는 것 이상의 일을 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어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의 정치계산 탓에 증폭하는 난민 문제, '푸틴 러시아'가 드리운 신(新)냉전의 기운을 보여줌으로써 냉전 당시 또는 이전으로 돌아간 국제사회 일각의 자화상을 드러낸다.
우리나라 독자들이 특히 눈여겨볼 만한 내용은 마지막 장, '우리는 99%다-불평등의 회귀' 편에 많이 나온다.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인 브란코 밀라노비치는 1988~2008년 사이 산업혁명 이후 처음으로 세계시민의 경제 불평등이 줄었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이 규정한 '절대빈곤층', 즉 1.25달러나 이에 못 미치는 돈으로 하루를 사는 사람이 뚜렷하게 감소하고 중국의 중산층이 팽창한 덕이다. 이런 거시ㆍ표면 수치만으로 따지면 역사는 진보한 듯하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그 부산물인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가른다.
웰시는 이 대목에서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를 인용한다. 1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재산이 인구의 상위 1%에 집중됐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영국에서 두드러졌다. 자본을 가진 사람이 투자를 하면 수익을 4~5%는 낼 수 있었고 세금은 거의 안 내거나 아예 안 냈다. 이런 구조는 사유재산이 국가 경제보다 더 빠르게 불어나는 토양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일부 선도국가가 공공성과 분배에 방점을 찍으면서 흐름이 바뀌는 듯했으나 1980년대 초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자유시장 및 감세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자본/소득 비율'은 다시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장 부유한 미국인' 1%는 미국 전체 재산의 35%를 거머쥔 것으로 나타났다. 2009~2012년 모든 소득 증가분의 90% 이상을 '가장 부유한 미국인' 1%가 차지했다. 가장 부유한 1% 가정은 '전형적'이라는 미국인 가정의 225배만큼 부자이며, 이런 수치는 냉전 종식 직전인 30년 전의 두 배로 뛴 것이다.(조지프 스티글리츠)
이렇듯 역사는 산업혁명 초기 '불평등의 시대'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를 입고 20세기 하반기 한 때 '복지국가 시대'로 이행했다가 다시 19세기형 '불평등의 시대'로 회귀했거나 회귀하는 중이라는 게 웰시의 결론이다.
슬라보예 지젝 같은 이의 언어를 기대하고 이 책을 읽지는 마시길. 웰시가 날린 건 카운터 블로나 니킥이 아니라 '정신 차리고 돌아보라'며 정중하게 내미는 잽에 가깝다. 각종 통계와 역사 속 사실을 툭툭 던지는 듯이 제시해 조망하기 좋다.
'한국'을 상대화해서 언급하는 구절 하나가 흐름과 무관하게 흥미롭다. "1945년 이후 민주주의의 두 번째 큰 물결을 일으킨 것은 파시즘의 결정적인 군사적 패배와 일본ㆍ한국ㆍ독일 같은 나라들을 연합국이 점령한 것이다."(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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