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호의 라이브 리뷰]야닉 네제 세갱의 필라델피아 사운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1990년 이후 네 차례 한국을 다녀갔고 그때마다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 유진 오먼디가 음반에서 뿜던 찬란한 사운드,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아쉽다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지난 7일과 8일 내한 공연을 책임진 야닉 네제 세갱을 바라보는 국내 반응은 7년 전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의 파보 예르비에 열광하는 모습과 닮았다. 지휘자의 넘치는 에너지에 매료됐고 역사주의 해석과는 동떨어진, 과장으로 범벅이 된 소리의 향연에 이틀 연속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올해 마흔 둘의 세갱은 동아시아 애호가 그룹에 여전히 위력적인 오먼디식 필라델피아 사운드의 향수를 되살렸다.
오먼디가 40년 넘는 감독 재임 기간(1936~1980년)에 쩌렁쩌렁 울리는 브라스와 풍성한 스트링으로 악단을 길들인 배경엔 상주 공연장, 아카데미 오브 뮤직의 건조한 음향을 빼놓을 수 없다. 2001년 킴멜센터 버라이즌홀 개장 이후, 필라델피아에 재임한 감독들(자발리시ㆍ에센바흐ㆍ뒤투아)은 악단의 고유한 성질(聲質)을 새 어쿠스틱 조건에 접목하는 데 애를 먹었다. 표면적으론 리먼 사태를 계기로 2011년 파산 직전까지 갔지만, 본질적으로 리카르도 무티(1980~1992년) 이후 후임 감독의 결과물에 환상적인 요소가 없는 게 몰락의 근원이었다. 유럽적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악기군 사이에 모호한 안개를 걷어내며, 다이내믹 레인지를 넓히는 새로운 리더가 절실했다. 위기에 등장한 이가 몬트리올 출신의 젊은 스타, 세갱이었다.
내한 기간, 악단의 해석은 롯데콘서트홀과 예술의전당의 음향 환경에 따라 관객에 전달되는 차이가 뚜렷했다. 오르간 설치, 무대 규격, 방사형 좌석 배치에서 롯데콘서트홀은 버라이즌홀과 흡사하다. 지난 7일 공연이 끝나고 "이제 롯데콘서트홀이 나에겐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하는 홀"이라는 세갱의 격찬에는 본심도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익숙한 구장에서 승수를 반복해서 쌓는 메이저리그 투수처럼 본거지와 유사한 홀에서 악단은 능력의 최고치를 발휘한다.
지난 7일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에서 필라델피아는 각 파트에서 분명한 음향을 냈고, 군집의 팡파르는 안정적이었다. 프랑스ㆍ러시아 근대음악에서 불가결한 관악의 안정감을 쭉 이어가는 저력이 세갱이 우상으로 삼은 뒤투아의 젊은 시절과 겹친다. 브람스 교향곡 4번은 듣기에 시원시원하지만 청년기 주빈 메타가 LA 필에서 보인 '건강한 브람스'류와는 구별됐다.
그동안 로테르담 필과 두 차례 한국에 왔지만 세갱이 예술의전당을 섭렵한 건 8일이 처음이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의 솔리스트로 나선 악장 데이비드 김과 오케스트라는 서로 충돌을 피했다. 그 결과 갈등을 통해 즉흥적인 의사가 교환되는 재미는 없었다. 협연자는 나긋나긋했고 그 작은 소리를 살리기 위해 세갱은 볼륨을 더 낮추는 바람에 호쾌한 사운드도 증발했다. 오히려 3악장 도중, 데이비드의 현이 끊어지고 부악장의 것을 빌려 곡을 마칠 때까지의 긴장이 악단의 본 모습이었다.
마지막 곡 베토벤 '운명'이 세갱 커리어의 현재를 보였다. 지휘자는 음가에 개별적인 의미를 부여해 길게 늘어뜨리는 대신 음을 짧게 잘라 예리한 소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독주악기들이 크게 화음을 울렸지만 중후한 운명은 아니었다. 에워싸는 소리와 핵심이 되는 소리의 구분이 예술의전당에선 뒤섞였다. 다이내믹은 있지만 부드러움은 아쉬웠다. 고속으로 달리는 F1 머신에 피트스톱이 필수적이듯, 세갱은 악장 사이뿐 아니라 곡 안에서도 자신의 페이스를 돌아보는 한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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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티스 음악원 출신이 주축을 이룬 필라델피아 단원들의 유대감은 남다르다. 2016~2017시즌도 파업으로 시작할 만큼 노조도 강성이다. 향후 세갱이 메트로폴리탄 음악감독을 겸하는 동안 필라델피아에서 음악적 비전을 제시하는 데 소홀하다면 2026년까지 연장된 계약 기간이 밀월로만 일관하진 않을 것이다. 해외 투어 관객의 박수는 단체의 음악적 성취와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점도 오케스트라의 수뇌라면 냉철히 살펴야 한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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