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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시를 재료로 조각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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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인 지난 4일 저녁 서울 성수동 유니베라 사옥 야외무대에선 색다른 패션쇼가 열렸다. 늘씬한 남녀 모델들이 경쾌한 음악과 밝은 조명 아래 런웨이를 걸으며 의상과 가방 등을 선보이는 것은 여느 패션쇼와 다를 게 없었지만 ‘성수 소셜 패션쇼’라는 이름이 이 행사의 남다른 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대에 오른 18개 팀의 옷과 잡화들은 성수동의 숙련된 장인들과 젊은 디자이너들이 협업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국내 최초의 ‘소셜 패션’무대였던 것이다. 입상자들에 대한 시상도 길게는 수십년간 성수동에서 손에 기름때를 묻히고 살아온 ‘장인’들이 참여해 20대 디자이너들에게 상장을 건넸다.
“무엇이 소셜패션이냐고요?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지원하는 패션이랄 수 있죠. 패션산업의 관련자들과 지역사회가 협업을 통해 사회혁신과 ‘더불어 사는 삶’을 디자인하는 패션, 지역의 생산 환경을 기반으로 사회적 가치를 담은 상품을 개발하고 창조하는 패션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수 소셜패션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고 있는 김윤환 작가(51·사진)의 설명이다.

이날의 패션쇼는 오는 2020년까지 ‘성수 사회적경제 패션 클러스터’를 조성하기 위한 첫 단계사업의 성과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이 패션쇼를 마련하기 위한 작업은 지난 7월에 시작됐다. 디자인공모전을 거쳐 50팀의 디자이너가 선정되었고, 9월과 10월 두 달간 운영된 현장패션학교 ‘잇다’에서 성수 지역 장인, 패션계 전문가들이 멘토링을 제공하며 협업 작업을 했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18팀의 작품이 뽑혀 이날 무대에 오른 것이다.
회화 조각가인 김 작가가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게 된 건 성수동에 20년째 살고 있다는 인연도 많이 작용했다. ‘성수 주민’ 김 작가가 보기에 성수동은 “옛날 주민들과 새로운 이주민들이 만나는, 매우 다양하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고 산업도 구산업과 신산업이 충돌하고 있으며 문화적으로는 인위적인 문화가 섞여 있는” 곳이다. 그는 “기존의 철공소나 인쇄, 자동차정비 등의 공장들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으며 소셜벤처 등의 새로운 흐름과 디자인들이 어우러진 예술가들의 실험무대가 될 수 있는 성수 지역에 패션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은 단지 하드웨어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고 디자이너와 장인들, 그리고 지역의 기업들과 자원들의 여러 가지 네트워크를 조직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그간 실험적이며 도발적인 문화예술 운동을 끊임없이 펼쳐 왔다. '스쾃'이라는, 방치되었거나 버려진 공간을 예술가들이 문화활동을 통해 재활용하는 운동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펼쳐졌을 때도 그와 역시 작가인 부인 김강씨의 역할이 컸다. 문래동의 철물공장촌을 예술촌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거리의 예술가’로 ‘문화 게릴라’로 늘 제도권 밖에서 살아온 그를 서울시가 창작공간조성추진단 단장으로 임명한 건 매우 파격적인 일이어서 적잖은 화제가 됐었다.
“만 43세에야 가져본 첫 직장이었죠.”
서울시의 창작공간은 이제 금천동의 창작센터, 신당동의 공예공방촌, 서교동의 예술실험센터, 연희동의 문학창작촌 등으로 계속 확산되고 있다. 경남 통영 동피랑의 벽화 작업에도 그의 손길이 많이 묻어 있다.

이런 일들을 하느라 서울 왕십리의 아틀리에를 찾을 짬을 내기 어려운 김 작가는 이제 얼핏 창작으로부터 멀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시 보자면 그는 지금 돌과 석고 대신에 지역의 역사와 유산, 사람들의 열정을 재료로 삼아 또 다른 조각을 빚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예술을 통한 도시재생’ 작업에서 예술의 의미를 확장하는 새로운 창작, 새로운 예술을 보는 듯하다.
이명재 편집위원 pr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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