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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끝섬 교동도 부군·사신당굿 20년만에 열려

최종수정 2016.05.18 17:11 기사입력 2016.05.1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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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자 만신 "보물섬 같은 교동도 전래 무속 복원하고 싶었다"

지난 15일 20년만에 열린 인천 교동도 부군당에서 주정자 만신이 악사들과 함께 굿을 벌이고 있다.

지난 15일 20년만에 열린 인천 교동도 부군당에서 주정자 만신이 악사들과 함께 굿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우리나라 서쪽 끝 섬, 인천시 강화군 교동도. 이 섬은 고려의 21대 왕 희종, 조선의 연산군, 광해군, 안평대군 등 많은 왕족들이 유배를 갔던 곳이다. 조선 10대 왕 연산군(1476~1506년)은 교동도 읍내리 화개산 기슭에서 지내다 두달 만에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사인(死因)은 학질(말라리아)로 알려져 있지만, 명확하지 않다. 화개산 남쪽으로는 교동향교와 연산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굿이 열렸던 '부군당(府君堂)'이 있다. 그 아래 남산포구 인근에는 또 다른 굿당인 '사신당(使臣堂)'이 자리한다. 사신당은 고려 때 송나라 사신들의 안전을 위해 제사를 지낸 굿당이다.

과거 3~5년마다 이 부군당과 사신당에서는 같은 날 굿이 열리는 일이 많았다. 굿을 할 때마다 3박 4일 또는 4박5일이 걸렸다. 두 굿은 원래 폐주 연산군의 한을 위로하고 사신의 안전을 위해 연행됐지만, 시간이 흘러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의미로 변화했다. 부군당에는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를 그린 무신도가, 사신당에는 서해안 지역에서 '어업신'으로 대표적인 임경업 장군이 그려진 그림이 놓여 있다.

지난 15일 찾은 교동도에서 부군당·사신당굿이 열렸다. 이날 부군당굿은 1996년을 마지막으로 이어지지 못하다가 20년만에 다시 열린 굿이었다. 이번 굿판은 교동도 무업을 4대째 잇고 있는 무속인 주정자(54)씨가 주관했다. 주씨와 함께 강화도 박수무당 전광재(74)씨 그리고 주순덕(장구), 유광수(장구), 조순례(징), 임기택(피리), 박설(피리)씨 등 악사들이 참여했다.

교동읍성 내 북쪽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부군당서 벌인 부군당굿.

교동읍성 내 북쪽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부군당서 벌인 부군당굿.


부군당 안에 비치된 연산군과 부인 신씨가 그려진 무신도

부군당 안에 비치된 연산군과 부인 신씨가 그려진 무신도


사신당 아래에서 본 남산포구

사신당 아래에서 본 남산포구


오전 10시 부군당굿이 먼저 열렸다. 옛날에는 초가집이었던 것이, 이제는 기와지붕에 시멘트 집으로 바뀌었다. 뒤편에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봄꽃을 활짝 피웠다. 마을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였고, 과일과 떡, 음식들이 준비됐다. 무당은 무복으로 갈아입고 굿의 시작을 알렸다. 춤과 음악이 한판 흥을 돋고 난 후 무당인 주씨는 당집에서 나와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악사들과 마을 사람들도 그를 따랐다. 교동향교와 화개산으로 가는 어귀에 동서남북 사방으로 장승을 맞는 거리가 진행됐다. 이후 부군당으로 돌아온 무당과 악사들은 모든 부정을 물리는 거리인 '벌부정', 맑을 정기를 가진 산천의 신신을 모시는 대목인 '산천거리', 부군당의 부군대감, 부군할아버지를 모시는 '부군대감거리'를 펼쳤다. 중간 중간 쉬어가는 마당엔 주민들이 무당이 주는 막걸리를 마시고, 덕담을 들었다.

이날 굿을 참관한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부군당제는 조선시대 각 관아에서 신당을 두고 아전과 서리 등 하급관리들이 마을주민과 함께 지낸 제사다. 조선후기 한강변의 상업발달과 함께 이를 관리하던 여러관청에서 집중적으로 행해졌다. 인천도서지역 중 유일한 교동도 부군당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아, 이번 부군당굿의 의미도 크다"고 했다.
점심무렵쯤 부군당 아래 남산포구와 인근 산기슭 사신당에서도 굿을 지낼 채비가 갖춰졌다. 사신당에서는 '사신대감거리'가, 포구 가까이에서는 무당이 공수를 내린 후 흥겹게 노는 '신장대감거리'와 여러 잡귀잡신을 대접해 보내는 거리인 '마당거리'가 펼쳐졌다. 이날 오후께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굿판과 어우러진 마을사람들은 축제 분위기로 흥에 겨웠다. 정 연구관은 "고려시대 교동도 남산포구는 중국 사신들이 수도 개성까지 들어가는 빠른 뱃길에서 중요한 길목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인 교동향교는 송나라 사신이 공자 위패를 잠시 모셨던 곳"이라며 "이후 사신당은 풍어와 어업 안전을 비는 굿당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중요한 장소가 됐다"고 했다. 이에 화답하듯 교동도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한 어민은 "정말 오랜만에 부군·사신당굿을 볼 수 있어 반갑고 기쁘다"고 했다.

무속인 주정자씨

무속인 주정자씨


◆4대째 무업 잇는 주정자씨 "집안 내력 옛 전래 무속 잇고 싶다" = 무속인 주정자씨는 증조할머니 정씨, 외할머니인 2대 독고개만신, 어머니 3대 숯고개만신으로부터 4대째 무업을 잇고 있다. 주씨의 가계는 계속 아들없이 딸들만 있어왔다. 주씨는 스물 셋에 신을 받아 스물 여섯에 무당이 됐다. 3년 동안 무당이 되기 위한 허줏굿, 소술굿, 내림굿을 치렀다. 주씨에 따르면 다음대가 내림굿을 받아 무당이 되면 선대는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이를 '인다리 놓는다'라고 부른다. 이는 강화도 무가에서 전해지는 특징이다. 주씨가 내림굿을 받은 다음해 그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내 딸들은 무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난 오래 살고 싶다"고 웃으며 얘기했다.

삼십년 넘게 굿을 벌여온 주씨는 강화도 일대에서는 꽤 이름있는 무당이다. 그는 강화도에 마련한 신당에서 가족과 함께 거주한다. 주씨에 따르면 교동도에는 세 명의 무속인이, 강화도에는 스무명 정도가 있다. 주씨는 "교동도 일대에는 과거 정월 초순과 칠월 칠석, 그리고 동짓날 연중 행사가 열렸다.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무사히 낳게 해달라고, 한해 농사, 고기잡이가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며 "강화도 인근 사람들은 굿에 익숙하다. 굿판이 열리면 마을사람들이 놀이 하듯 무관을 쓰고 심지어 무당에게 점을 치거나 공수를 내릴 정도로 굿은 모든이가 화합하는 마을의 축제"라고 했다.

주씨는 앞으로 부군·사신당굿을 매해 지속할 예정이다. 그는 "사라지는 우리 지역 문화를 재조명하고, 우리 집안 내력이기도 한 옛 무속 전래를 복원하고 싶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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