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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옥시 신분세탁 의혹

최종수정 2016.04.14 10:56 기사입력 2016.04.1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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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 가습기 살균제 제조·유통사가 편법을 동원해 형사책임을 피하려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옥시레킷벤키저는 2011년 12월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조직변경 설립 등기했다. 조직 변경이란 회사가 법인격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다른 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관련 법령 및 판례에 따르면 조직 변경이 이뤄진 법인에게 앞서 소멸한 법인의 형사책임이 대물림되지 않는다. 주주·사원, 재산, 상호는 그대로 남았지만 책임을 따져 물을 가습기 살균제를 생산·판매한 '법인'은 제도상 이미 사라지고 없는 셈이다.

이 같은 사실은 외부감사 및 공시 의무를 지지 않는 유한회사 성격상 살균제 제조·유통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임박할 때까지 외부로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옥시 측은 법인 조직변경 외에도 실험결과를 끼워 맞추고, 피해자들의 민원 글을 삭제하는 등 인과의 굴레에서 벗어나려 한 정황이 제기되고 있다. 보건당국이 살균제와 피해자 폐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적하고 제품 수거 등 사태 수습에 힘쏟을 동안, 잠정적인 가해자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사태 수습에 전념한 셈이다.

현재 검찰 수사의 관건은 살균제 제조·유통사가 제품공급에 앞서 원료성분의 흡입 독성 등 유해성을 확인했는지, 이를 알고도 소비자들에게 만들어 팔았는지다. 검찰은 피해자 전수조사를 마무리하고 다음주부터 업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책임이 인정된다 해도 업체 관계자 몇몇에 대한 형사 처벌이 피해 구제를 대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마땅한 보상틀도 아직이다. 2013년 국회는 피해자 구제를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단일 환경재난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실질적인 피해구제를 위해 같은 해 국회에 제출된 특별법안들은 19대 국회가 수명을 다해가도록 소관 상임위원회에 잠들어 있다.
통상 민·형사가 함께 얽힌 경우 형사 재판 결론이 나올 때까지 민사 재판이 대기 상태나 다름없는 국내 사법실태를 감안하면 보상은 더욱 요원하다. 살균제 피해 관련 업체 및 국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민사소송들은 2~4년씩 묵혀 있고, 결국 피해자들이 지난해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를 상대로 국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업체가 피해 발생 가능성을 알 수 있었다면 실제 손해보다 훨씬 큰 사실상 '징벌'에 가까운 배상금을 물려 이를 구제할 수 있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제 활용도 거론된다.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정의당 등 여·야 정당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불공정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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