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쁨의 '색수어필(色手語筆)' - 영화 '선셋 앤드 디바인' 이야기
그 뉴스를 보니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몇 년 전 서울 혜화동의 어느 카페에서 차를 마시다 우연히 뒷자리에서 10대인 듯한 소녀 목소리 몇이 주고받는 대화를 엿듣게 됐다.
“너도 봤구나? 나도 그게 좀 이상했는데. 남자 쉐이들이 모두 여자를 오락으로 생각하니 글자 속에도 그렇게 들어가 있겠지.”
“기분 드럽네.”
“‘여자랑 거시기 하면서 즐길 오’자겠지 뭐.”
“클클... 글켔군. 근데, ‘오입’이라는 말에도 ‘오’자가 들어가 있잖아?”
“그래. 그것도 그 한자 맞을 거야.”(엿듣는 형편에 냉큼 나서서 그때는 ‘그릇될 오(誤)’를 쓴다고 바로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여자하고 노는 것은 모두 그 판이군.”
“아참, 그리고 보니 ‘오랄(표준어는 오럴이 맞다)’에도 그게 들어 있잖아?”
“그것도 오락인가... 근데 ‘오’자는 여자가 거시기하는 ‘오’자인데, ‘랄’자는 뭐여?”
“랄?...지랄할 ‘랄’!”
여기까지 말해놓고 저희들끼리 깔깔거린다.
<러브 액추얼리>와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우리에게 친숙한 영국 출신 배우 휴 그랜트에게는 ‘오랄’이 진짜로 ‘지랄할 랄’자였을 것이다. 그는 35세 때인 1995년 로스앤젤레스 선셋대로에 자동차를 세워놓고 흑인 매춘부인 디바인 브라운에게 60달러를 주고 ‘오럴 서비스’를 받다 경찰에 체포된 일이 있다. 그가 연행되는 사진이 전 세계에 알려지자 미국의 한 방송국 여기자가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여성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했다.
“이번의 그랜트 사건을 어떻게 보세요?”
한 여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그랜트가 생각보다 소박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어요. 혹시 또 알아요? 제게도 그런 기회가 올지….”
이 잘생긴 배우는 이 일로 약혼녀와 서먹해졌을 뿐 아니라 요즘의 우즈처럼 언론의 추적을 따돌리고 숨느라 한동안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바람에 상대 여성이었던 디바인 브라운은 완전히 떴다. 그는 얼마 전 영국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휴 그랜트 때문에 생각지도 않게 큰돈을 벌게 됐어요. 덕분에 좋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됐죠. 제 인생 최고의 ‘오럴’이었어요. 입~뻐요, 오빠.”
그럴 만한 것이, 사건이 난 뒤 브라운은 포르노영화계의 마당발인 론 제레미를 만났다. 브라운은 안 그래도 몇 편의 광고 촬영으로 이미 큰 수입을 잡았는데, 다시 출연 섭외가 들어온 것이었다. 그 후 브라운을 주연으로 한 영화 <선셋 앤드 디바인>(1996)이 만들어졌고, 그 비디오 표지에는 경찰서에 잡혀간 휴 그랜트의 모습이 올라와 있다.
‘선셋 앤드 디바인’이라…. 선셋대로와 디바인 브라운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저녁답과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엮은 풍자다. 휴~ 선생. ‘오마이갓’이다.
이기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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