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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전시]노 화가의 '불온한 그림'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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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 화백,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풀서 12년만에 개인전

[오진희 기자]

김정헌 화백. 작품은 '곡괭이 선생'(1995년작).

김정헌 화백. 작품은 '곡괭이 선생'(1995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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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괭이선생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잉태하여, 흙으로부터 탄생하니 어릴 때부터 땅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지라. 그것이 한때는 괭이선생으로 대접도 받았으나 결국 땅 나라의 한낱 접장으로 늙어 죽었다." 황톳빛 머금은 흙이 흩뿌려진 판. 그 위에 크고 작은 곡괭이가 불규칙하게 붙어있다. 곡괭이는 에폭시로 그 형태를 떴다. 작가는 1990년대 들어 한창 망해가는 농촌을 생각했다. 안타까워했다. 농기구들을 의인화한 그림 주변으로 글도 또렷하게 새겨 넣었다.

# 얼룩진 화면에 거대한 두 개의 철탑. 비무장지대에 실재하는 남북의 철탑들이다. 한쪽에는 태극기가, 다른 한쪽엔 인공기가 펄럭인다. 그 사이로 회오리바람과 먹구름, 황폐한 군사시설이 보인다. 우리는 반세기 넘는 분단 상황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일하고, 싸우고, 하는 그 모든 것을 영위한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모르는 체하지만, 모르지 않는다. '집단적 트라우마'가 무뎌진 채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

# 얼마 뒤면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는다. 비명에 세상을 떠난 어린 사람들을 떠올리면 슬프고 먹먹하다. 권력과 제도에 대한 불신, 열패감, 도덕적 공황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그림은 검은 바다 위 격자모양의 창을 띄웠다. 창 안에서 노란 달빛이 바다로 흘러든다. '희망도 슬프다'는 제목. 망연자실하게만 있을 수 없어 달에 구원을 바란다.
이상한 풍경, 1999년, 캔버스에 아크릴, 131x162cm

이상한 풍경, 1999년, 캔버스에 아크릴, 131x16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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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도 슬프다, 2015년, 캔버스에 유채, 75x75cm

희망도 슬프다, 2015년, 캔버스에 유채, 75x7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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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70) 화백이 12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 작품과 과거 그림 서른 여점을 모아 회고전 형식으로 꾸렸다. 적나라한 텍스트와 이미지가 지금도 여전하다. 사회적 재난, 역사적 풍경, 도시, 농촌과 같은 우리의 일상이 담겼다.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라보는 노(老)작가의 '생각의 그림들'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그동안의 작품을 추려 넣은 화집, 작가노트, 평론을 담은 작은 텍스트북도 펴냈다.

최근 김 화백을 전시장에서 만났다. 보청기가 필요한 그였지만 눈빛은 맑고 강했다. 그는 민중미술 계열 화가로 불린다. 1980년대 '현실과 발언' 창립멤버이기도 했다. 또한 작가이지만 문화예술행정가, 시민단체 활동가로서도 일해 왔다.

김 화백은 "군부정권에서 사회비판적 문학이나 미술에 '민중'이란 단어를 붙여 불렀다. '민중미술'은 '빨갱이 미술'로 여겨졌다. 지금에 와서 다시 미술사로 살펴보면 그 당시 미술운동이 독특한 사조로 자리매김 할수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 제목은 '생각의 그림, 그림의 생각'이다. 부제는 '불편한, 불온한, 불후의, 불륜의,... 그냥 명작전'. 그의 그림엔 안락이 없다. "억압적인 권력에 분노하고 자본의 탐욕을 질타하며 고장난 제도를 비판한다."

작품들은 다채로운 재료와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과거엔 특히나 획기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잡다하게 여러 형식으로 돼 있는데 일정한 틀에 갇히는 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며 "생각을 강조하다보니 더더욱 많은 방법들을 작품제작에 동원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서 "나보다 사실 정신과 손이 같이 따라주는 작가가 참 많다"며 같은 시대 미술운동을 펼친 주재환, 신학철, 민정기 작가 등을 꼽았다. "그 중에서 주재환 선생은 정말 우리나라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분이다. 버려진 물건으로 그것도 미학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세상을 표현한다. 그런 사람들과 한 세대를 같이 지내왔고 또 행복했다."

전시는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검정로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풀. 02-396-4805.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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