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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덕의 디스코피아 16] 큐어(The Cure) - Disintegration(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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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로 끝난 상업적 자살

[아시아경제] 서른이라는 나이는 당사자를 우울하게 만든다. 아마도 젊음이 끝나간다는 불안이 엄습하는 시기여서일 것이다. 큐어(The Cure)의 리더 로버트 스미스(Robert Smith)는 1989년 서른을 맞이한다. 당시 그는 성공이 주는 압박과 나이 들어간다는 염려를 자주 말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원맨밴드에 가까웠던 큐어의 8집은 우울과 고독, 절망의 분위기를 한껏 담고 있다. 스미스조차 이 앨범은 상업적 자살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따라서 '디스인터그레이션'의 청자는 우울을 견디거나 즐길 준비가 필요하다. 이들이 우울을 전달한 방식은 단순하고 효율적이다. 여러 악기를 섬세하게 배치하여 사운드의 응집력을 강조한 것이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기타 연주와 반복적이면서 힘 있는 드럼과 베이스가 먼저 자리를 잡으면, 두 대의 기타가 시간을 두고 연이어 등장한다. 이들의 연주는 복잡함이나 화려함과 거리가 멀지만 단단하며, 서로의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메운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나면 절망적인 가사를 담은 스미스의 보컬이 등장한다. 잘 손질한 재료를 하나씩 얹어 하나의 완성품이 되어가는 노래는 마치 케이크를 만드는 과정을 연상시킨다.
멜로디의 훅이 없고, 대신 반복적인 연주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킨 앨범의 곡들은 대부분 러닝 타임이 6분 이상일 정도로 상당히 길다. 당연히 이 노래들은 즉각적이고 자극적인 쾌감을 주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들었을 때 비로소 어둡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보인다. 차분하게 우울을 노래한 ‘픽처스 오브 유(Pictures of you)’나 과격하고 절망적인 ‘디스인터그레이션’은 앨범을 대표하는 곡들이며 치밀하고 멋진 앙상블을 들려준다.

대부분의 곡들이 ‘세임 딥 워터 애즈 유(The Same deep water as you)’처럼 소름끼치도록 어둡지만, 약간 다른 매력을 가진 곡들도 존재한다. 엉큼한 리듬과 몽롱한 기타가 일품인 ‘룰라비(Lullaby)’에는 씁쓸함 속에 설탕을 반 스푼 넣은 것 같고, 스미스가 약혼녀에게 바친 ‘러브 송(Love song)’에서는 모처럼 밝은 가사가 들린다. 이 두 곡조차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앨범에 수록한다면 가장 기괴하고 어두운 곡이 되겠지만.

우울과 슬픔, 절망으로 가득한 이 앨범은 스미스의 예상을 뒤엎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픽쳐스 오브 유’와 ‘러브송’, ‘룰라비’가 차트에서 선전했고, 앨범은 전 세계에서 삼백만 장 넘게 팔렸다. 서른의 우울로 시작한 상업적 자살이 미수로 끝나고 이제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잘 만든 작품이 취향을 압도한 좋은 예다. 이처럼 이 앨범의 진정한 성공은 우울의 감정을 제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다. 그러나 듣고 나면 우울해지기보다 오히려 슬픔이 희석되는 느낌이 든다. 타자의 우울을 관람하는 일이 자아의 슬픔을 덜어주기 때문은 아니다. 긴 시간을 메운 소리들이 기승전결을 지니고 그 감정의 갈등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치료한다(cure)는 밴드명은 이 앨범의 음악과 참 잘 어울린다.

■ '서덕의 디스코피아'는 … 음반(Disc)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독자를 위해 '잘 알려진 아티스트의 덜 알려진 명반'이나 '잘 알려진 명반의 덜 알려진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코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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