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쥔 與, 험지출마의 정치학
단수추천제 내년 총선에 적용…입지 다질 기회지만 낙선땐 '잊혀진 인물' 전락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새누리당이 내년 총선에서 단수추천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른바 '험지출마론'이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험지란 정의는 없지만 지지율이 절대 열세인 지역이나 접전 지역에 출마해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선거구를 일컫는다.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유력 후보들이 단수추천제를 활용해 경선을 거치지 않고 험지에서 당선되면 단기간에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의미있는 지지율을 얻지 못한 채 낙선 시에는 정치권에서 잊혀진 인물로 추락할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 공천제도특별기구는 최근 공천 룰 논의를 벌여 당헌당규에 명시된 단수추천제를 내년 총선 공천에 적용하기로 했다. 단수추천제란 공천 신청자가 1인이거나 월등한 경쟁력을 가진 후보자의 경우 경선 없이 공천관리위원회의 찬성으로 공천을 주는 제도다. 특히 김무성 대표를 필두로 당 차원에서 영입한 중량급 인사에 대해서도 단수추천을 허용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김 대표의 험지출마 권유를 받은 안대희 전 대법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유력 후보가 사실상 경선 없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선거 경험이 없는 명망가나 대권을 노리고 있는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험지출마론은 극한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새누리당 소속 후보가 여권 약세 지역이나 수도권과 같은 박빙의 승부처에서 야당 후보와 경쟁해 승리한다면 향후 거물급 정치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험지에서 당선됐다는 파급 효과와 더불어 당을 위해 헌신했다는 '살신성인' 이미지까지 겹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일례로 지난해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불모지인 전남 순천ㆍ곡성에서 당선된 이정현 의원은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돼 정치적 입지를 세웠다. 이 최고위원은 당시 '선거혁명'에 버금가는 파란을 일으켰다고 평가받았다.
김부겸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2012년 19대 총선에서 여당 텃밭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해 40% 이상의 득표율을 얻어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지난해 대구시장 선거에서도 낙선했지만 40.3% 지지를 받으면서 여권을 긴장시킬 만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험지출마로 정치적 입지를 다진 인물이다. 16대 총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 후보로서 당선이 확실한 서울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다. 비록 선거에선 패배했지만 이를 계기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대권 주자로 자리 잡을 발판을 마련했다.
향후 험지출마 권유 대상자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을 비롯해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거론된다. 일찌감치 대구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도 험지출마 대상 리스트에 올라 있다. 당 일각에선 그가 두 차례의 도지사 경력을 기반으로 경기 지역에 출마하길 내심 바라고 있다.
다만 후보자 입장에서 당선이 유력한 지역을 놔두고 험지에 출마해 가시밭길을 걷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어야 할 선택이기도 하다. 정치계에 막 입문하려는 전ㆍ현직 관료나 청와대 인사들도 치열한 데뷔전을 감당하기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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