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풍경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하느님도 사람에 대한 평가를 자원(自願)하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차등을 둬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것이고, 그때부터 심판이니 평가니 하는 것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재미있는 일이었을 리 없다.


누구를 일등으로 만들고 누구를 꼴찌로 만드는 일, 변태가 아니라면 어찌 재미로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혹여 누군가를 억울하게 하기도 하고, 과분하게 하기도 하고, 혹여 누군가를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고, 또 허무한 느낌에 빠지게 할 수도 있는 평가를 한다는 것. 이거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바깥의 일이다.

스물이 넘는 사람의 역량과 결실과 가능성을, 어찌 칼로 두부 자르듯 견적을 낸단 말인가. 난감한 일이지만, 해야하는 일인지라 결론을 내놓고 보니, 어떤 이에게는 미안하고 어떤 이에게는 민망하고 어떤 이에게는 고마운 마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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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평가서에 적힌 '자기'에 대한 아우성들을 읽노라면, 직장이라는 오글거리는 삶의 조건들이 안쓰럽고 그악스럽다. 함께 동고동락해온지라 다 아는 처지인데도, 잘못한 것은 애써 가리고 잘한 것은 크게 벌려 말을 하니, 그놈의 고과라는 놈이 인성마저 피폐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나 또한 그동안 얼마나 얄궂은 자화자찬으로 저 난을 메워왔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 글들을 읽으며 냉소와 미소를 오갔을 선배들을 생각하니 더욱 부끄럽다.

굳이, 소통을 위해 만들어놓은 이런 형식적 장치들을 배격하거나 비웃을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작은 서류의 창(窓)으로 오가는 욕망과 생각들을 겨울햇볕처럼 가만히 쬐며, 휴일날 책상 앞에 오래 앉아서, 회사의 낯익은 얼굴들과 이름들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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