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에디터 편지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디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유명한 말인데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도 있을 것 같지만 모르는 게 당연하다. 방금 내가 만든 말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이어서 죄송합니다. 엉성한 흉내지만, 뜻은 여하튼 그렇다.
아날로그들이 디지털만 보면 기가 죽고, 오프라인이 온라인 소리만 들어도 뭔가 끈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드는 세상에서, 디지털이어서 죄송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세상의 시간을 딱 둘로 나눈다면 아날로그 인류의 시간이 있고 디지털 인류의 시간이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 시대에 태어난 우린 행운인지 불행인지 불행중 다행인지 다행중 불행인지 두 시간을 모두 겪으며 살아가는 영혼 분열증의 시대에 들어앉아 숨쉬고 있다. 아날로그는 이제 '안할라고'가 되어가고 디지털은 잠깐만 곁눈 팔아도 '뒤지털'이 되어버리는 괴물의 시절은 숨차고 고단하다.
나는 창조경제를 얘기하고, 경제혁신을 말하고, 디지털화를 외치고 청년취업을 호소하는 대통령을 보노라면 가끔, 그동안 알았던 창조경제가 헷갈리고 경제혁신이 뒤엉키며 디지털화가 뭐였더라 싶어진다. 더구나 청년취업에 대해서는 문제의 핵심이 산으로 가버린 기분이 늘 든다. 스마트폰 많이 팔고 고급져진 현대차 많이 팔고 벤처 공장 많이 짓고 그 친구들 찾아가 가상 안경이나 껴보는 것이 창조경제인 것만 같고 가끔 정계 재계 윗대가리들 팔 비틀고 압박하면서 나라걱정을 일삼는 것이 경제혁신인 것만 같고 알바페이 품 더 많이 팔게 하고 청년일꾼들 통째로 수출하고 쏟아지는 졸업백수는 아몰랑 그냥 슬퍼,가 되어버리는 심리구조가 청년대책의 전부인 것만 같아보이는, 내 천박한 인식이 늘 문제다.
왜 창조경제가 이쯤에서 튀어 나오는지, 불황의 정체는 무엇인지, 기업들은 왜 비전을 줄이고 있는지, 세상이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런 국면에서 우리가 공들이고 힘써야 할 게 뭔지, 아무 것도 모르는 눈을 가지게 된 까닭은, 아마도 디지털문명에 대한 개념이 실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럼, 넌 뭘 좀 알고 있느냐고? 알고 있으면 이렇게 헤매겠는가. 다만 지금의 저 단세포적이고 즉물적인 인식이 아니라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그리고, 나의 자리에서 내 눈에 보이는 것들로 그 문제의 일단을 통증처럼 느껴볼 뿐이다.
그런 책임없는 관점을 접어서 들어주시겠다면, 나는 저 디지털문명의 시작이나 단서를 '미디어 혁명'으로 읽는다. 혁명이란 말은 지금껏 우리가 미디어라고 생각했던 것이 미디어가 아니게 되었거나 미디어의 극히 보잘 것 없는 일부가 되어가는 현상을 뜻한다. 경제와 산업과 글로벌과 취업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미디어는 왜 나오느냐고? 미디어가 그 모든 것들의 끈을 쥐는 것이 디지털문명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이전에도 네트워크는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계는 있었고 인맥도 있었으며 소통과 교류도 있었다. 지금의 네트워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모든 네트워크를 그야말로 디지털 네트워크 속으로 끌어들이는 블랙홀이거나 화이트홀이기 때문인 게 문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과 문제들과 교류들과 거래들과 사건들의 핵심이 모두 그 '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이 시대의 네트워크의 본질이다. 네트워크는 단지 기술적이고 외형적인 거미줄을 당연히 포함하지만, 결국은 그 줄 안에 '콘텐츠'를 포함한다. 네트워크의 형식과 그 내용물들. 이게 바로 이 시대의 거대한 미디어시장이라는 것이 나의 인식이다.
예전에 신문이나 방송이 하던 소통을 '미디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 인식이, 이 새로운 미디어를 읽지 못하는 문맹이 되게 만든다. 생산과 소비, 유통과 금융, 시장 경제, 글로벌화되고 사소화된 그 복잡계의 네트워크 전부가 미디어가 지녔던 형태적인 '망'과 그것이 유통시키는 콘텐츠를 이루게 된다. 지금도 먹고살고놀고즐기는 경제가 모두 네트워크 사회의 디지털 미디어 속으로 들어가는 그 문제가, 무시무시한 '융합'의 현실이며, 이전의 경제로는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철학적 판갈이가 바로 창조경제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다. 은행도 없어지고 백화점도 없어지며 정부도 없어지고 시장도 없어지고 그 와중에 신문사도 사라지고 방송사도 종치는 것. 이게 미디어혁명의 무시무시한 뷰이며 이상이 말한 '오감도'같은 것이 아닐까.
글로벌 경제의 급속한 네트워크화가 불황과 리스크와 파동을 격심하게 만들고, 삶의 충격적인 변화들이 사회의 욕망을 빠르고 과격하게 중계해가는 과정에서 세계의 갈등과 갈증과 고통과 분노들이 급성장한 것이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자면, 우리가 옛날처럼 열심히만 살고 착하게만 살면 다시 좋은 시절이 올 것이라는 그 생각부터 다시 CT를 찍어보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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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혼의 혼란 혹은 비정상적인 영혼을 지닌 채, 며칠 전 디지털로 먹고살아야 하는 세상 속으로 바로 진입해보니, 뭔가 참담한 기분이 꼬리를 문다. 디지털 퍼스트와 디지털 온리를 입버릇처럼 외치는 언론사들의 내면에는, 아직도 디지털은 그저 애들 놀이터에서 클릭수 뽑아내서 수익원들을 안심시키는, 그 비슷한 무엇이다. 어쩌면 '디따 지랄맞은 개털'처럼 여겨지는 관점이 촉수에 불편하게 걸린다.
이 무한 확장된 미디어 시장의 허허벌판에서 철수형이라도 된 양 삽 하나 딱 들고 먼 산 바라보니 거기엔 카프카의 '성'을 방불하는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고 거기서 쏟아지는 메시지가 이 물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어 있다. 당분간 이 성을 뱅뱅 돌며 연애편지를 써가며 생존을 도모하면서 삽질의 면적을 넓혀가는 꼴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해오지만, 그렇다고 이미 모르는 바도 아니었던 그것에 '쫄고' 앉았을 일도 아니다. 하지만 디지털이 국정원같은 음지가 되거나 오프라인에서 쓰지 않은 것들을 모아두는 거대하고 퀴퀴한 하치장처럼 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는 묵과 못할 일이다.기어이 가치를 바로잡아야겠다는 각오가 서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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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부서로 발령이 나서, 화려한 출입처와 예우받는 외근기자의 '자리'에서 하루 아침에 운세가 급전직하한 듯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는 후배들에게도 '디송'하고, 꽤 오랜 기간 동안 미디어의 저열해진 생존경쟁의 일선에서 낚시페이와 '언론같은 소리 하고 있네'가 목울대까지 올라온 '인턴'에셔날한 예비기자님들에게도 무량 '디송'하다. 문과가 망한 것도 디지털이 전시대의 정신적 성취들을 돌아보거나 추인할 틈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니, 문송한 것도 디송한 것도 어쩌면 내가 처한 자리의 업보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 아수라장 '아사리판'에서 한 바탕 놀아보지 않고 염라대왕한테 무슨 보고서를 쓰겠는가. 죽을 때 죽더라도 놀고가야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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