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눈치 안 본 국회의장의 죽음과 의회민주주의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나는 국회의장에 취임하면서 '날치기를 없애겠다'는 말과 함께 처음부터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대외적으로 천명했다. 그것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진정한 입법부로 자리 잡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고(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회고록을 통해 밝힌 첫 국회의장 취임 당시의 각오다. 실제 그는 그동안 국회에서 당연한 일처럼 받아 들여져왔던 일들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그가 취임하기 전 국회의장은 여당만의 국회의장이거나 통법부(通法府)의 수장에 불과한 존재로, 청와대가 날치기 요구를 하면 무기력하게 이를 받아들이곤 했었다. 하지만 이 전 국회의장은 달랐다. 그는 청와대의 압박과 여당의 항의 속에서도 '직권상정'을 한사코 거부하며 여야간 합의에 의한 입법절차를 지킬 것을 요구했다.
1994년 예산안 처리는 그의 '의회주의'의 시험대가 됐다. 고(故)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예산안이 법정시한인 12월2일까지 처리되어야 한다며 이 전 의장과 정부 여당에 날치기를 주문했다. 이 전 의장은 김 전 대통령과의 비공개 회동 등을 통해 한사코 여당 단독 예산안 처리에 반대했다. 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예산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날치기로 처리되고 본회의만 앞두게 됐다. 청와대와 여당의 압박을 받던 이 전 의장은 결국 직권상정하는 대신 권한을 부의장에게 넘기겠다고 밝혔다. 차마 스스로 날치기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대신 그는 두 가지를 했다. 첫째는 국회의장직에 대한 사직서를 쓰는 것이었다. 제출 날짜만 비워뒀지만, 날치기가 이뤄지면 바로 제출할 요량이었다. 또 하나는 '의장 사회권'이 부의장에게 넘어갔음을 야당에 알리는 일이었다.
결국 날치기는 실패했다. 야당이 여당의 날치기 의도를 파악하고 격렬히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이 전 의장은 품안에 사표를 꺼내지 않아도 됐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예산안은 결국 5일 뒤 여당 단독이 아닌 여야 합의로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전 의장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통령의 직접적인 당부까지 거부했던 탓인지 그는 1년 2개월 만에 국회의장에서 물러났다.
2000년 다시 의장을 맡게 된 이 전 의장은 다음과 같은 각오를 밝혔다. "이 나라 국회는 여당의 국회도, 야당의 국회도 아닌 바로 국민의 국회인 것입니다. 저는 앞으로 이 자리에서 의사봉을 칠 때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며, 또 마지막 한 번은 국민을 바라보고 '양심의 의사봉'을 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 의장은 또 다시 시련을 맞았다. 청와대와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공동정부를 구성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교섭단체 진출을 위해 원내 교섭단체 구성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추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를 통과시키려 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이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여야간의 극한 대립 속에서 청와대와 여당은 결국 이 전 의장에게 직권상정 결단을 내려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여야간 합의를 들며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국회법은 개정되지 않았다. 이 전 의장의 원칙은 다시 한번 이겼다. 그는 이후 청와대에서 직권상정 요구는 없었다고 술회했다.
우리 국회는 원래 직권상정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제헌국회부터 5대국회까지는 본회의중심주의를 채택했으며, 6대부터 8대까지는 모든 안건의 위원회 심사를 거치는 것을 절대적 요건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9회 국회부터 직권상정이 생겨나면서 국회 운영은 달라졌다. 다수당의 독주가 시작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소수당의 물리적 저지 역시 시작됐다.
이 전 의장은 이같은 갈등구조를 종식시키려 했다. 특히 그의 의장 임기 재임 중인 2002년 2월에는 '국회의장의 당적이탈'과 '국회의원 자유투표제'가 국회법에 포함됐다. 국회의장은 다수당에서 나올지 모르지만 다수당만의 의장이 아니며, 국회의원은 소속정당이 아닌 각각의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것이 국회법 정신에 담기게 됐다. 토론과 대화, 타협을 통해 운영되는 의회주의가 한발 앞으로 다가온 듯 했다.
이 전 의장은 이같은 노력의 결과가 후퇴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그는 2001년 국회보와 인터뷰를 통해 "이제는 이 나라에 날치기는 영원히 없어진 겁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그의 이같은 예측은 틀렸다. 이후에도 날치기는 계속 됐고, 폭력의 악순환도 반복됐기 때문이다. 상황을 종식시킨 건 이제 칭찬보다는 비판만 듣는 국회선진화법 덕분이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유혈참극도, 울부짖는 의원들 속에서 법안과 예산안이 처리되는 비극도 막을 수 있었다.
합의에 의해 결론을 찾아가는 의회민주주의는 최근 중대위기에 놓였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야 합의 없이는 법안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국가비상사태'라는 이유 등을 들어 청와대가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연일 직권상정 압력에 부닥친 상황이다. 급기야 그는 "직권상정을 하면 성을 바꾸겠다"며 강하게 거부했다. 신념의 문제 이전에 현행법으로는 노동개혁법안 등 쟁점법안은 직권상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 의장이 입장이다. 하지만 정 의장을 압박하는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청와대는 물론 여당과 보수시민단체들까지 압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국 의회민주주의가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 것은 분명한 상황이다. 정 의장은 자신이 존경했던 이 전 의장처럼 의회민주주의의 수호자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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