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5시-7시는 외도하기 좋은 시간
'알바시네'- 5 to 7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불륜이란 말은 험상궂다.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부정적 감정들이 그 낱말의 뉘앙스를 선데이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적인 것으로 만들어왔을 것이다. 외도나 바람이란 말은, 그보다는(윤리를 깼다는 비난을 직설적으로 담은 그 말보다는) 덜하지만,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점과, 한때의 부박한 기분을 강조하는 어감이 그리 곱지는 않다.
영어 또한 사정은 비슷하다. extramarital(혼외정사의)이나 immoral(불륜의)같은 말들이 있고, adultery(간통)에서 나온 형용사, adulterous가 있다. 혼외의 사랑은 affair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요즘 유행어인 '썸(섬씽)'의 기분을 담은 것 같다. 러브 어페어는, 로맨틱해 보이지만, extramarital affair(혼외연애, 외도)를 완곡하게 말한 표현이다.
러브 어페어를 아름답고 소중한 것으로 묘사해낸 영화 '러브 어페어'는, 이 방면 영화의 전범(典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5 to 7(파이브 투 세븐)'은, 외도를 낭만적 코드로 읽어낸 고전 반열에 오를만한 또다른 작품이 아닌가 싶다. '다섯시부터 일곱시까지'라는 의미는, 결혼한 사람이 외도에 쓸 수 있는 시간을 뜻한다(고 주인공 아리엘이 말했다). 무엇을 하기엔 어중간한 시간이며 부부가 함께 하는 저녁이나 밤과는 다른, 그 시각. 어떤 사랑이 파트타임으로 스며들듯 고유의 자리를 차지하고 삶을 감미롭게 흔든다.
스물 네살의 청년 무명작가 뉴요커와 서른 세살의 유부녀 파리지엔느의 사랑은, 일견 뻔해보이지만, 그것을 사랑의 중심에 놓고 조심스럽게 성찰하며 그 사랑에 대해 결코 비난하는 관점을 강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도덕적인 중무장을 해제시킨다. 헐리우드의 새 별로 떠오른, 키 작은 안톤 옐친(이 친구는 생 페테르스부르크 출신의 러시아인이다)에게 건네는, 007 본드걸 출신의 늘씬한 베레니스 말로에의 부드러운 키스와 포옹은, 아이를 학교 보내는 엄마의 입맞춤같은 분위기지만, 이런 잡생각이야 말로 남녀의 사랑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들이 삐져나오는 증거일 것이다.
사랑을 다섯시부터 일곱시까지만 방목하는 일은, 처음엔 안전하고 감미롭지만, 사랑의 속성이 그 테두리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점이 이 영화가 지닌 뇌관이다. 이것은 뉴욕과 파리의 문화 차이일수도 있다고 영화는 말해준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둘 있는 유부녀의 사랑이라 할지라도 관용과 존중으로 그것을 지켜주려 하는 남편의 태도(그 또한 기꺼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아내에게 소개할 정도이다)는, 영화 속의 미국남자인 브라이언도 놀랄 문화적 충격이다. 유태인인 브라이언의 부친은, 부부 관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해 확고하지만 아들의 선택에 대해 가부장적인 완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부부들 또한, 스스로는 그렇게 살 수 없다 하더라도, 진실한 사랑에 대한 열광과 존중은 프랑스 사람 못지 않은 듯 하다.
브라이언은 그 두 시간의 사랑에 쿠데타를 일으켰다. 나머지 스물두 시간까지 모두 아리엘과 나누고 싶었다. 두 아이들까지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나이 차이를 문제삼는 아리엘에게, 그는 나이의 아름다움을 역설한다. 브라이언이 거금을 들여 산(그만큼의 진지한 마음을 담은) 크리스찬 디올 반지 앞에서 그녀는 이 남자를 만나고난 다음 얻게된 설렘과 감동과 완전한 쾌락과 사랑의 감수성들을 떠올리며 청혼에 응락한다.
그 뒤의 이야기들은 저 사랑의 대담하고 파격적인 선택이 남길 아픔들을 껴안기 위한 장치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다 품는듯 하지만, 결국 자기와 상대 둘 밖에 보이지 않는 맹목임을, 영화 속의 그들이나 영화 밖의 우리들이나 모두 모르지 않는 일이다. 이야기는 달콤하고 아픈 결을 가만히 숨기면서도 안전하고 아름답게 끝을 다독여 쓸어내렸지만, 영화 포스터에 적힌 것처럼 오드리 햅번 이후로 잊고 지내던 로맨스의 애잔한 여운들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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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의 비문(碑文)들, 구겐하임 미술관의 '죽은' 그림들, 브라이언의 소설 '인어공주(아리엘이란 이름을 듣고 그 소설을 쓰겠다고 그는 말했다)',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을 눈가리고 감별하던 쉐리 르만 와인샵 등 뉴욕의 데이트코스들이 마음을 머물게 한다. 샹송 '상 뚜와'(사라 나타샤 완)과 팝송 '다이너'가 두 나라 남녀의 감수성을 교차시키며 마음을 돋운다.
주말 그녀와 함께 앉아, 서로 각자의 생각과 추회(追懷)들로 슬쩍 혹은 훌쩍 눈물을 훔친 시간이었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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